같은 하늘 밑에 같은 땅을 밟으며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 인간성이 같지가 않다.사람 내면세계가 다 같으면 최소한 우리사회는 서로 의심만은 하지 않고 살아갈법하다. 인간된 유형을 대략적으로 갈라보면, 첫째 은혜를 반드시 기억해서 보답코자 하는 반면에 수모 당한 것도 철저히 앙갚음하려는 사람, 둘째 은혜 입은 것은 까맣게 잊고 수모에 대한 복수에는 집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 셋째 은혜는 꼭 기억하지만 보복에는 마음을 비우는 사람, 넷째는 은혜도 모르고 보복할 줄도 모르는 사람 정도가 될 것이다.옛 성현들은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인간은 은혜를 아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인간세상은 보은의 정신을 사회 윤리가치의 기초로 삼아왔다. 자식된 자는 부모님의 낳고 기르신 은혜에 효도로 보답하고, 제자는 스승의 은혜를 성공으로 보답하며, 어렵고 힘들 때 남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 도리만 지켜져도 우리사회가 퍽 살만한 모양일 것이다.그런데 세상이 온통 깨지고 갈라지고 터지는 소리로 만연하는 것은 모르긴 해도 위에서 지적한대로 은혜는 새까맣게 지우고 과거 당한 것에 대한 보복에만 눈이 벌건 인간유형이 세태를 지배하는 까닭이 없지 않을 것이다.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로지 보복과 적개심에 불타있는 나라 정치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가진 자들을 향한 못가진 자들의 적대감이 큰 몫을 해온 것도 부인하지 못한다.문제는 가슴속 한(恨)때문일 것이다. 이 땅의 통치역사는 거의 대부분이 선의의 도전세력을 잔인한 방법으로 짓밟은 이야기로 덮여있다. 짓밟히고 억눌린 세력이 절치부심하고 가슴깊이 한을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지상정의 이치일 것이다. 이렇게 한 많은 정치지도자가 같은 한을 가진 측근 무리들과 더불어 집권에 성공했을 때 그들이 무슨 생각부터 하게 될지는 불 보듯 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보복정치의 악순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돼있는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다.또 유독 우리나라 부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분명한 이유도 있다. 돈 버는 짓거리가 어린애들 코 묻은 돈에 노인들 쌈짓돈까지를 가릴 것 없이 돈만 된다면 아득바득 얼굴에 철판 깔고 덤비는 장돌뱅이와 다를 게 없는 재벌, 기업윤리나 상도덕은 고사하고 교묘한 수단으로 세금까지 떼먹는 재벌, 워낙 뒤가 구린 탓에 지레 겁먹고 정치권력에 현금뇌물을 차떼기로 바치는 재벌, 막대한 비자금 만들어서 해외금고에 도피시켜 놓은 재벌, 이런 것들이 우리 서민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대충의 재벌 그림이다. 요즘 한창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재벌 가족들이 우리서민사회에 심어놓은 한(恨)의 무게를 모르지 않다면 대기업군은 한결같이 이번 기회를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역사의 죄인이 돼서는 안 된다. 만약 이번에도 어물쩡 덮고 넘어가면 정경유착의 폐해에 몸서리친 국민한(國民恨)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오늘의 한국사회가 이토록 시끄럽고 불안해진 연유가 한풀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없다. 숨죽이고 속으로 삼켜왔던 한 맺힌 응어리를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한 현실이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놓을지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한풀이는 또 다른 한을 만들 수밖에 없을 텐데 우리사회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한(恨)생산에만 몰두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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