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율은 47%를 기록했으며, 부정평가율은 44%를 기록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2년이 넘은 시기에 가시적인 성과도 보이지 않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긍정평가율이 높은 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긍정평가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콘크리트지지층으로 불리는 ‘묻지마 지지층’만으로 이렇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정책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다른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청와대의 고도의 통치술에서 찾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는 그들의 얘기를 빌리면, 촛불혁명으로 만들어진 정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국가운영의 기초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나라를 바로 세워 보고자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선 것이 촛불혁명이다.

촛불을 들었든 들지 않았든, 집회에 참가했던 참가하지 않았든, 촛불혁명을 부정하려는 사람은 소수이고 촛불혁명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치의 기본인 갈라치기를 통해 한 수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럴듯한 국가 비전을 얘기할 필요도 없었고 얘기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적폐청산’만으로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가능했으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의 차별화를 통해 지지를 더욱 공고히 해 왔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것이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다.

게시판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띈다. “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이상 추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각 부처 및 기관의 장, 대통령 수석·비서관, 보좌관 등)가 답하겠습니다.”

불통과 무능의 박근혜 대통령을 경험한 국민들에게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었으며, 대의기관인 국회를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이 공간을 통해 ‘대의기관으로서 청와대’라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이었다고 한다. ‘백악관처럼 우리도 국민들의 청원에 답하자’고 아이디어를 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내심은 불통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확실하게 차별화하자는 것이었을 것이다.

초창기 청와대 국민청원은 몇 가지 이슈들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연착륙하였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이 청와대가 해결할 수 없는 청원들이 올라오면서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러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국민청원은 더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서 결국 ‘청와대 국민청원’은 당초 취지와 다르게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의 본질은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 국민청원’은 책임을 지는 정치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이다.

청와대가 정치와 정책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국회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제약받을 수 있다. 국민과의 소통이 필요하고 국민적 의사를 결집해야 하는 정당이 기능 부전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이고, 대의정치이다. 이러한 명제에 대한 청와대의 동의가 있다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발전적 해체를 모색해야 할 때다. <이경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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