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 지난 430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여야 4당이 선거제와 개혁입법을 패스트 트랙에 태운 이후 국회 파행이 60일을 넘어 장기화되고 있다. 추경 등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집권여당이 답답할 것 같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급할 게 전혀 없는 쪽은 여당이고 다급해진 쪽은 야4당이다. 집권여당은 한국당이 반대하는 선거제의 경우 합의가 되면 범여권 대연정으로 정국을 이끌면 되고 무산돼도 일여다야 구도속에 한국당과 일대일 구도로 총선을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 과제인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까지 포함돼 생색은 냈다. 하지만 여야 4당 합의 이면에는 선거제가 무산될 경우 공수처·검경수사권까지 회부 자체가 안 되도록 연동시켜놔 민주당의 꼼수라는 시각도 받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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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제 1번 처리 안 되면, 2번 공수처, 3번 검경수사권 자동무산
- 與, 선거제 통과되면 범여권 진영 대연정불발 시 일여다야 ‘OK'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 원내대표는 지난 422일 공직선거법·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검경 수사권조정 관련법안 등을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처리키로 합의했다.

합의문을 보면 선거제와 개혁입법안을 4월 말까지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고 이들 법안에 대해서 본회의 표결 시에는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순으로 처리한다고 합의했다. 이 합의문에서 빠진 자유한국당과는 협상에 성실히 임하되 합의 처리를 위해 노력한다고 적시했다.

잃을 게 없는민주당... 초조해지는 야 4

이후 여야 4당은 동물 국회라는 오명 속에서 430일 양대 특위를 열어 관련 법안을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했다. 이에 반발한 한국당은 장외투쟁에 돌입해 국회가 장기 파행으로 흐르는 계기가 됐다. 국회가 공전을 거듭하고 여론이 악화되자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국회 정상화를 위해 한국당을 설득했지만 한국당의 패스트 트랙 안건에 대한 합의처리요구에 대해 합의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으로 문구조차 양보 하지 않고 있다.

노력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국회 장기파행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외형상 한국당이 국회 정상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집권여당 역시 파행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 여야 4당이 발표한 합의문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면을 보면 오히려 급한 쪽은 여당이 아니라 한국당을 비롯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이다.

여당은 선거제와 개혁입법안을 패스트 트랙에 태우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잃은 게 없고 오히려 실익만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선거제 관련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 등 소수야당이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했지만 한국형 연동형제를 역으로 제안해 통과시켰다. 홍영표 전 원내대표의 작품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이자 사법개혁의 핵심인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까지 함께 패스트 트랙에 태웠다. 최대 330일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본회의에 회부된다는 점에서 적쟎은 성과를 낸 셈이다.

, 바른미래당에서 공수처, 검경수사권에 대해 관심이 높고 선거제에 무관심한 민주당의 태도가 미덥지 않아 본회의 안건처리에 순서를 매겨 1번 선거제, 2번 공수처, 3번 검경수사권 순으로 처리를 하되, 만약 선거제가 통과가 안될 경우 자동으로 공수처 및 검경수사권안도 상정되지 못하도록 이면 합의를 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자칫 청와대가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대해 집권여당이 뒷받침하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선거법과 패키지로 묶어나 선거제 합의가 안될 경우 사법개혁법안도 무산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청와대가 한국당의 단독 영수회담 요구는 거절하고 5당 대표 회동 후 별도 회담을 역제안한 배경이나 민주당이 합의 처리를 요구하는 한국당에 맞서 문구 수정도 양보하지 않는 배경에는 한국당이 패스트 트랙 안건에 대해 합의처리를 해 줄 여지가 거의 희박하기 때문이다.

현재 집권여당의 모습은 선거제가 한국당의 반대로 통과가 안 되고 개혁 입법안까지 무산된다고 해도 총선을 앞두고 불리할 게 없다는 인식도 엿보인다. 추경에서부터 선거제 그리고 개혁입법안의 처리 불발에 대해 한국당 책임론으로 몰면서 집권여당으로선 할 도리를 다했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 검경수사권의 본회의 통과의 핵심인 선거제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보면 상당히 희박하다. 선거법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기 위해선 일단 6월 말 활동시한이 끝나는 정개특위에서 합의를 해야 한다.

정개특위는 민주당 8, 한국당 6, 바른미래당 2, 평화당 1, 정의당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개특위를 통과하려면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으로 통과된다. 10명이 필요한데 민주당과 정의당을 합쳐 총 9명이다. 바른미래당 혹은 평화당 의원 중 한 명이라도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여야4당 이면합의 선거제불발 시 개혁법안 무산

우여곡절 끝에 정개특위를 통과한다고 해도 법사위에서 회부돼 재차 논의해야 한다. 만약 관련 상임위에서 통과가 안 돼 부결돼 폐기될 경우에도 국회의원 30명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다. 문제는 본회의장 통과 여부다.

현재 민주당은 128석이고 정의당은 6석이다. 의안 통과를 위해선 과반의석이 필요한데 16석이 부족하다. 평화당 14석과 민중당 1석을 포함하고 무소속 범진보 성향 무소속 의원들의 표를 모조리 끌어모아야 과반 확보가 가능하다. 한국당은 112석이고 바른미래당은 28석이다.

하지만 최근 선거제 및 사법개혁법안에 대해 평화당과 바른미래당의 기류를 보면 패스트 트랙에 태울 당시와는 기류가 달라 난항을 예고한다. 우선 선거제에 합의한 민주평화당의 유성엽 원내대표는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기 위해 세비 50%를 감축하는 대신 의원정수 50명을 늘리자고 주장해 선거제 원안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패스트 트랙에 올린 선거제 개편안은 현행 지역구 253.비례대표 47석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 지역구 225·비례대표 75석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구가 통폐합돼 없어지는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원정수를 늘릴 수 없다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주장을 수용한 고육지책이라며 지역구 수를 그대로 두고 의원정수 확대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맞장구 치고 있다. 물론 집권여당은 논의를 할 수 있지만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선 반대하고 있다.

손 대표와 더불어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빼고 석패율제만 도입하는 선거제 개편안을 국회 정상화 중재대안으로 내놔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석패율제도는 지역구에서 근소한 표 차로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운천 의원이 발의했으며 오신환 원내대표를 비롯한 12명의 의원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정 의원은 여야 모든 정파가 수용 가능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받기 힘든 안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정의당이 받기 힘든 안으로 바른미래당의 제안이 범여권 공조를 깨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감을 표출하고 있다.

선거제도뿐만 아니라 공수처 설치 법안에도 반대를 하고 있다. 오 원내대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되지 않은 현행 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해 기형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재 바른미래당은 패스트 트랙에 민주당 백혜련 안과 함께 권은희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도 함께 올려놓은 상황이다.

권 의원 안의 골자는 공수처장 임명 시 국회 동의를 받도록 했고 검사와 수사관 임명 권한을 대통령이 아닌 공수처장에 부여하게 했다. 이에 대해 백 의원은 국회가 너무 개입하는 방식이 돼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원안을 고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1야당인 한국당의 반대를 차치하고라도 여야 4당의 입장이 확연히 차이가 나 법안 통과까지는 첩첩산중이다. 특히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선거제와 공수처안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원안을 고수해 여권 일각에서조차 선거제에 대한 통과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주류 한 여권 인사는 선거제가 통과되든 통과되지 않든 여당은 손해 볼 게 없다여야 4당이 합심해 통과를 할 경우 여소야대 정국이 되더라도 범여권 진영과 연정을 통해 국정운영을 하면 된다설령 선거제 통과가 안 될 경우에는 일여다야 구도속에서 한국당과 일대일 대결도 나쁘지 않다고 분석했다.

집권여당, 선거제에 목 매달지 않는 이유 보니...

실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한국당을 제외한 여당과 소수야당이 약진해 180석 이상 가져갈 경우 대연정을 통해 정국운영을 할 수 있다. 여권 일각에서 손학규·박지원 총리론’, ‘심상정 노동부 장관론’, ‘유승민 기획재정부장관론이 나온 배경이다.

반면 선거제가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될 경우에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안까지 폐기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한국당과 소수 야당에게 물어 총선에 임할 경우 원내 1당도 노려볼 만하다는 계산이다. 또한 새롭게 구성된 21대 국회에서 다시 사법개혁안을 추진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국회 정상화를 외치면서도 선거제 합의에 대해 한국당과 소수야당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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