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에는 2월과 4, 61일과 816일에 임시회를 소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91일부터 100일 동안 열리는 정기회 말고도 상시적으로 국회를 열어 일 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조항이다. 모르면 몰라도 국회법 조항 중에 가장 안 지켜지는 조항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전에는 122일로 규정된 예산안 처리시한이 그 오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국회가 문 닫아 걸고 일을 안 한다고 욕을 먹고 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국회 문은 열릴 듯 말 듯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국회 공전의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지만 싸잡아서 양비론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잘 잘못에도 경중이 있고, 책임의 크기도 달라야 한다. 이번에는 문 닫힌 국회의 가장 큰 책임을 자유한국당에 찾아야 한다.

발단은 지난 4월 여·4당이 공수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면서 부터다. 패스트 트랙으로 불리는 신속처리 안건 지정2015년도에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주도로 개정된 국회선진화법에서 도입된 제도이다. 자한당은 자신들이 도입한 제도를 여·4당이 시행했다고 국회 밖으로 뛰쳐나간 뒤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자한당이 국회로 돌아 올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8일 패스트 트랙을 주도했던 홍영표 전 원내대표의 임기가 끝나 이인영 의원을 새로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는 패스트 트랙으로 공전 중인 국회 정상화를 위해 야당에 유화적인 태도로 접근했다. 이 시점에서 자한당은 국회로 돌아왔어야 했다.

장제원 의원이 오랜만에 바른 말 했다. 자한당은 “‘제왕적 당대표제’, ‘제왕적 원내대표를 운영하고 있다. 장 의원 말대로 자한당이국회는 올스톱 시켜놓고 당 지도부의 스케줄은 온통 이미지 정치뿐인 책임이 크지만, “당내엔 침묵의 카르텔만 흐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황교안 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가 자한당이 실기하도록 만들었다.

나 원내대표가 야당의 협상창구를 책임지게 된 이후에 여야대립이 격렬해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 원내대표는 자신의 할 일이 여당과의 싸움이 아니라 협상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나 원내대표의 협상 상대는 청와대가 아니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다. 자한당이 여야대치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원내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나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이 지점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황교안 당 대표도 나 원내대표 못지않게 국회의 정상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당의 투톱이 서로를 의식하면서 누가 더 강경한가 경쟁하는 것도 보기 드문 장면이긴 하다. 심지어 황 대표는 자한당의 당화합이나 총선승리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당 대표 취임과 동시에 대권행보를 이어왔다. 황 대표가 관심있는 것은 친황계구축이고,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사실, 황 대표가 대권 도전을 하는데 자한당이 꼭 원내 1당 일 필요는 없다. 100석 정도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이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총선 2년 뒤에 돌아오는 대선이라는 선거 사이클로 봤을 때 총선에서 석패하는 것이 꼭 나쁜 결과는 아니다.

대권을 목표로 한다면 황대표는 총선 승리보다 열혈 지지층을 다지는 일이 더 절실하다. 마음이 급한 건 추경과 민생법안을 처리가 급한 여권일 거고, 안타까운 건 총선승리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당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이지 않을까.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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