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보냈다더니…알고보니 직원 배 속으로

깜순이 [사진=수원여대 학생 제공]
깜순이 [사진=수원여대 학생 제공]

 

지난 12월,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수원여자대학교 해란캠퍼스에 조그만 아기 강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기견으로 거리를 헤매던 강아지를 학교 용역업체 직원이 데려온 것이다. 까무잡잡한 털이 섞인 강아지에게 학생들은 ‘깜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빗질도 해주고 간식도 주는 등 학생들이 보낸 사랑 덕에 깜순이는 무럭무럭 자라 8개월 만에 수원여대 학생이라면 모두 아는 ‘스타 강아지’가 됐다. 그런데 이처럼 사랑받던 깜순이가 지난달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학교 어느 곳에서도 깜순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은 깜순이의 행방을 찾아 나섰고,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학생들 추궁에 들통 난 미화원의 거짓말
“공정한 수사로 관련자 처벌 원해”

깜순이가 사라진 것은 지난달 11일 즈음이었다. 갑자기 자취를 감춘 깜순이가 걱정된 학생들은 녀석의 행방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깜순이를 데려온 것이 용역업체 소속 직원 A씨와 B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재활용 분리수거장 경비를 목적으로 유기견 깜순이를 데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A씨를 찾아가 깜순이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교내에서 동물을 기를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깜순이를 근처 농장에 입양 보냈다”고 대답했다. 학생들은 처음에 이 말을 믿었으나, 곧 학교 경비원은 깜순이가 화물차에 실려 가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학생들이 농장을 찾아 깜순이의 행방을 추궁하자 농장주 B씨는 “스스로 목줄을 끊고 도망갔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 변명을 믿을 수 없었던 학생들은 직접 깜순이를 찾아 나섰다.


학생들이 몇 주간 추적한 결과 드러난 진실은 놀라웠다. 깜순이가 학교 인근 개 농장에 끌려가 도축, 잡아먹힌 것이다.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학생들의 끈질긴 추궁이 이어지자 A씨의 부하직원 C씨는 결국 “지난달 깜순이를 잡아먹었다”고 고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이 사랑으로 돌보던 깜순이는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순식간에 ‘술안주’ 된 깜순이

학생들에 따르면 A·B·C씨 등은 깜순이를 화물차에 태워 보내 호매실동에 있는 모 도축장에서 4만 원을 주고 식재료로 가공했다. 이들은 고깃덩어리가 된 깜순이를 안주 삼아 오후 2시부터 동네 주민 2명과 술파티를 벌였다.


모든 사실을 알고 분노한 학생들은 A4용지 7장 분량의 대자보를 만들어 학내에 부착했다. “‘입양’ 아니라 ‘도살장’으로 직행한 깜순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대자보에는 깜순이가 사라진 이유와 도살장으로 가게 된 과정 등이 담겼다. 또 학생들은 ▲청소용역 업체 직원인 A씨와 C씨를 즉시 해직시킬 것 ▲교내 동물사육 금지와 관련된 교칙을 찾아서 공개할 것 ▲학교는 학우들과 관련된 사안을 처리할 때 학우들에게 먼저 공지할 것 ▲학우 요청 시 적극적으로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정절차를 수립할 것 ▲깜순이와 쿠키가 가정으로 입양됐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을 각 단과대에 전달했을 때처럼 학생들이 알아낸 사실에 맞게 이를 정정하고 사과할 것 등 5가지의 요구 사항도 대자보에 담았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학습권 보장과 안전 등을 위해 깜순이를 안전한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청했다”면서 “A씨가 입양 보냈다고 답변해 그런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A씨 등이 소속된 청소용역업체 관계자를 불러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또 “경찰 조사가 진행될 경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다면 징계회부 등도 요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는 깜순이 사건으로 충격 받은 학생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학교생활상담연구소의 상담과 미술 치료 등도 지원하기로 했다. 용역업체 직원을 대상으로는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C씨 등은 이미 10일 소속 업체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 의뢰했지만 처벌 가능성 낮아

하지만 이 정도로 깜순이를 잃은 학생들의 분노를 잠재우기는 부족했다. 학생 중 15명은 수원서부경찰서에 깜순이를 죽게 한 A씨 등 3명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또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해 깜순이의 억울함을 풀어 주겠다고 했다. 다만 실제로 A씨 등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축산법’상 개는 가축으로 분류돼 식용을 목적으로 사육이 가능하다. 그러나 ‘축산물위생관리법’상 식용을 위해 도살 가능한 가축에서는 빠져 있다. 8개월간 깜순이에게 밥을 주며 기른 사람이 A씨라는 점을 감안하면 “식용을 목적으로 길렀다”고 진술할 경우 법망을 피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개를 잡아먹어 처벌받은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는 대부분 타인의 개를 훔쳐 잡아먹었기에 처벌이 가능했다. 지난해 5월 길 잃은 반려견을 훔쳐 개소주를 만들어 먹은 남성에게는 ‘점유 이탈물 횡령’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물론 도살 방법이 잔인했다면 처벌 근거가 생긴다. 지난해에도 개를 전기 도살해 오던 60대 남성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허용되는 도살 방법은 동물의 생명존중과 고통 정도, 지속 시간, 사회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씨 등이 깜순이를 전기 도살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면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 도살장이 허가를 받지 않은 곳일 경우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도 적용된다.

“제2의 깜순이 막자” 관련법 개정안 요구

깜순이 사건을 계기로 일각에서는 또다시 ‘개 도살 금지’ 법제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 서로 충돌하는 두 법안을 손봐 개 도살을 확실히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3일 기자가 만난 D씨 역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평소 깜순이를 아껴 학생들로부터 ‘깜순이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그는 “평소 개고기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법안이 개정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2의 깜순이 사건을 막기 위한 이들의 요구는 여전히 ‘식용 목적의 개 도살 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충돌한다. 다만 이번 사건의 여파로 아직까지는 개 도살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큰 모양새다.


주인에게 버려진 뒤 잠시나마 학생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을 깜순이. 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 깜순이의 짧은 삶이 개 도살 금지 법제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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