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진 3김(金) 시대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밤 별세했다. 지난 2015년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상도동계가 흔들렸고 이번 이 여사 별세로 남아있던 동교동계마저 정치적 구심점을 잃었다. 이로써 근현대 한국 정치를 이끌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른바 ‘3김 정치’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들은 각기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같은 편에, 때로는 대척점에 서면서 정치에서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음을 보여줬다.

왼쪽부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대통령기록관]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뉴시스]
왼쪽부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대통령기록관]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뉴시스]

-구심점 없는 DJ의 동교동계·YS의 상도동계 정치적 입지 축소돼

‘3김’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정치 활동을 했던 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모두가 성이 ‘김(金)’이라는 점에서 유래했다. 3김의 계파는 자택이 있던 행정구역명을 따와 상도동계(YS), 동교동계(DJ), 청구동계(JP)로 불리기도 했다. 이 중 JP 계파는 청구동계보다는 김종필계 또는 JP계로 불렸다.

3김은 정치활동을 하면서 경쟁과 협력을 반복했다. YS와 DJ 세력은 군부 정권 당시 함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노태우 당시 후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줬다. DJ와 JP는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손을 잡아 ‘DJP 연합’을 만들어 정권을 잡았다.

‘3김 정치’는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6월 23일 작고하면서 끝났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이희호 여사가 남아있었다. 향년 97세로 별세한 이 여사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다. 이 여사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전현직 정치인들의 조문이 이어졌으며 이들은 하나같이 이 여사 없는 김 전 대통령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두 사람은 정치인생을 함께했다.

이 여사가 별세함에 따라 한국 근현대 정치를 이끈 3김 시대가 사실상 마감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인 손명순 여사가 생존해 있지만 손 여사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한 내조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흔들리는 동교동계·상도동계

구심점이 없어진 동교공계와 상도동계는 앞으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전망이다.

동교동계는 DJ의 집에 드나들던 비서들이나 정치인들을 의미한다. 주로 DJ에 의해 정치에 입문하거나 1995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한 정치인 중에서 DJ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권노갑, 한화갑 전 의원과 박지원 설훈 의원 등이다.

지난 2003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동교동계’라는 말이 나와선 안 되고 모임을 일절 갖지 말라”고 말한 뒤로 큰 세력을 형성하지 않던 동교동계는 지난 18대 대선과 20대 총선에서 분열을 거쳤다.

동교동계인 한광옥·김경재 전 의원은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1999년 DJ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광옥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합류했고 당선 이후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김 전 의원은 대통령 홍보특보를 맡았다. 이에 권 전 의원과 박 의원 등이 정치적 배신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동교동계의 두 번째 분열이 일어났다.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과정에서 국민의당이 창당됐고 권노갑, 박지원, 최경환, 정대철 등 동교동계 주류가 대거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동교동계 전부가 국민의당으로 옮기지 않고 설훈, 이석현, 김한정 등이 민주당에 남으면서 동교동계는 분열됐다.

동교동계 의원들 중에서 아직까지 현역인 의원들이 많이 있지만 친문세력의 등장으로 여권에서는 비주류로 밀려 있고 야권에서는 호남 기반 지역 정당으로 다음 총선을 주도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의 큰 분열을 겪으며 결속력이 약화되고 구심점마저 사라지자 이들의 정치적 입지가 축소됐다는 평이 제기된다.

YS 중심으로 뭉친 상도동계는 굵직한 현역 의원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이들 역시 동교동계와 다르지 않게 정치적 입지는 좁아졌다. 상도동계 대표적 인물은 김무성, 서청원, 정병국 의원 등이다.

지난 2015년 YS 서거 당시 자신이 YS ‘적자’라며 앞다퉈 상주 역할을 자처했던 김 의원과 서 의원은 현재 당내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황교안 대표가 등장함에 따라 대권 도전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 의원은 당내에서 본인을 혁신위원장으로 세우는 ‘정병국 전권 혁신위’가 논의되고 있으나 당이 내홍을 겪으면서 이마저도 어려울 전망이다.

DJ·YS 2세 정치도 사실상 막 내려

DJ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은 지난 15대 총선에서 아버지의 지역구인 목포·신안갑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나서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16대, 17대 총선 때도 같은 지역구에서 연이어 당선돼 3선 의원을 지내 아버지의 정치 인생을 이어갔다. 그는 파킨슨병을 앓다 지난 4월 20일 별세했다.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은 동교동계인 한화갑 전 의원의 국회의원직 상실로 공석이 된 무안·신안 선거구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공천 문제로 2008년에 탈당해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낙선 후에는 별다른 정치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 삼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은 21대 총선에 목포 출마가 예상되지만 동교동계인 박지원 의원이 버티고 있어 여의도 입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YS의 차남인 김현철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는 계속해서 여의도 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열리지 않고 있다. 문민정부 시절 ‘소통령’으로까지 불린 김 이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그는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나라당 산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의 부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돌연 민주당으로 입당하고 20개월 만에 탈당했다. 지난 4.3 재보선 당시 한국당 통영·고성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지만 “검토한 바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현재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돼 있어 그의 입지는 좁아진 상태다. 또한 민주당 입당과 탈당으로 정치 노선이 모호해졌다는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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