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선가 읽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 한토막이다. 작은 어촌마을에 새벽이 되자 언제나처럼 남자들은 고기잡이를 위해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자정을 넘겨도 배가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불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바닷가로 나가 강풍이 부는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를 향해 남편과 아들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불이야!’를 외쳤다. 마을 쪽을 돌아보니 그 가운데 누구네 집이 화염에 휩싸여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집 한채가 다 타고 새벽 동이 틀 무렵 고기잡이 나갔던 남자들이 돌아왔다. 죽은 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돌아오자 가족들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그런데 누구네 부인은 간밤에 우리 집이 불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며 남편을 붙들고 슬프게 울었다. 그러자 남편은 ‘아니 그럼 그 불길이 우리 집이 타는 것이었단 말이요? 아, 그랬구나!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고기를 쫓다가 강풍이 닥쳐 방향을 잃은 채 어둠속을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 불기둥이 치솟아 불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요, 만약 우리 집이 불에 타지 않았으면 우리는 함께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요, 그러니 우리는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이요!’라고 소리쳤다.인생 새옹지마라고 했듯이 인간의 삶은 이렇게 뜻밖의 현실과 부딪치는 가운데 곧잘 전화위복의 풀스토리를 엮기도 한다. 그래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교훈도 우리는 읽어냈다. 특히 참담했던 숱한 격변의 역사를 간직한 민족이었기에 우리는 더욱 화를 복으로 만드는 강한 투지와 저력을 지혜로 익힌 것이다.지금의 대한민국 형편은 어려웠던 역사의 어느 때 못지않게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심하고 일해서 먹고살 터전마저 흔들리고 있는 나라사정이 여간 절망스럽지가 않을 것이다. 겨우 직장을 얻어도 언제 밀어닥칠지 모를 구조조정 불안에 전전긍긍해야하고 자영업은 불경기 여파로 엄두도 낼 수 없는 우리서민들 처지가 위정(爲政)의 사정거리에서 비켜난지가 한참이다.차라리 국가가 한바탕 군사전쟁이라도 치르고난 폐해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라면 그 같은 국민에게서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는 성숙한 마음과 더불어 아픔을 고루 함께 나누려는 슬기가 기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이 땅을 엄습하고 있는 아픈 기운은 더 큰 것을 이루고 얻기 위해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이 아니다. 아무리 뜯어봐도 조국 대한민국이 어제까지 비축해 놓았던 국가 경쟁력이 무참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조바심 외에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적 아픔이 멀지 않은 장래에 옥동자를 낳기 위한 산고(産苦)로는 솔직히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60년 세월 동안 민족주의로 포장해 있던 사상적 실체가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남는다. 왜냐하면 이 기회에 시야를 어지럽혔던 안개를 걷어내고 나라 정체성을 보다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대를 너무 낙천적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국민은 ‘하면된다’는 의식을 신앙처럼 키워낸 민족이다. 지금 현실은 가진자는 가진자들대로 이 땅을 벗어나겠다는 도피성 이민희망자가 늘고, 못 가진 서민사회는 이참저참 자괴감에 빠져들고 있다.그래서 앞서 소개한 어느 어촌마을의 이야기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어놓은 집이 다 불타 버려도 그것이 이정표가 되어 생명을 구했다면 그보다 더 큰 다행이 없다. 국가체(國家體)의 생명은 나라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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