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한제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1882년이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1948년 이승만 정권과의 밀월관계가 시작됐다.이런 한미관계의 기본 틀은 맹방이란 이름으로 안전성을 유지해왔다. 가끔씩 불협화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우리는 미국과 협력관계를 지속함으로써 국방비 부담을 줄이고도 확고한 안보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막대한 이점을 자존심 하나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경제성장 과정에도 미국이라는 최대의 시장과 자본은 절대적이었다.미국의 입장에서도 우리를 맹방으로 삼음으로써 소련의 남진정책과 공산혁명의 남하를 차단해서 일본의 안전과 태평양지역의 안보를 유지시켜 국제질서를 주도해 나갈 수가 있었다. 이처럼 미국이란 나라는 혈맹과 동지적이라는 표현으로 우호적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반드시 자국의 실리를 최대로 추구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대한정책은 대 한국 우호적 바탕이 아니라 태평양전략의 한 측면전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금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입장이 현격히 달라지고 있는 연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한미관계의 비중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거기서 얻는 실리가 두 나라 모두 줄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미관계에 충실함으로써 절대적인 이익을 얻었던 시절은 지난 것이다. 오히려 미국이 지나치게 닦달해서 성가신 존재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퇴조가 몰고올 세계변화에 대비한 새로운 대국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급한 중국예찬론이 나오기도 한다.그러나 이는 우리가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이 시점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은 양국관계의 현주소일 것이다. 우리가 미국을 믿지 못할 나라로 여기고 있는 동안 미국은 정부, 의회, 언론 할 것 없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키워온 것이 사실이다. 세계유일의 분단국, 일본에 가위눌린 나라, 잦은 시위와 극심한 정치혼란 등이 미국인들 머리속에 들어있는 한국관이다.이런 까닭에 한국이 얕보여지는데다가, 러시아의 위력이 없어져서 이제 한국이 미국의 영향권을 벗어나더라도 미국의 안보전략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며, 또한 교역이 끊어져도 미국경제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심 해왔던 바다.그런 것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한 우리의 반미감정이 아시아권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이 몹시 당황해하는 눈치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을 새로이 중요한 나라로 보는 시각이 늘고 경제, 안보측면에서 순수 협력대상으로 한국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냉정할 필요가 있다. 반미정서를 부채질할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한국관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다.5천년 역사의 단일민족국가, 문화민족, 기적을 낳는 국민저력, 지난역사에서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겨레의 참모습을 제대로 미국인들에게 각인시키기만 하면 인종차별 잘하는 미국인들의 한국관은 180°달라질 것이 분명하다.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한다고 자극주고 멀어지기 보다는, 우리는 잡은 고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고기가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현명함을 보여야 할 때다.과거의 일시적 적대행위나 영향력 행사에 분노해서 미국을 적대국처럼 몰아붙이는 행위는 이 땅이 자랑하는 선비정신이 아니다. 선비가 선비노릇을 못해서 선비대접을 받지 못하면 그 선비 사랑채를 찾아들 딴 큰손님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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