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의 개념은 개인적인 것과 단체적인 것으로 나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생활 속에서 몹시 미운 사람까지를 범주에 넣지만, 집단체나 국가차원에서 볼 때는 밉다는 개념과 적이라는 개념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기업같은 이익집단이 말하는 ‘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상대집단이 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국가집단은 나라이익과 안위를 위협하는 외세를 포함한 일정규모의 조직이나 무장 세력을 적으로 일컫는다. 따라서 우리의 현실적 적은 병영국가 북한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항시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백만이 넘는 거대한 군사력이 남한점령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북한정권은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다만 대한민국 국군의 우위적 전쟁 억제력과 경제력을 비롯한 우리사회 모든 부문이 북한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는 점이 그들의 오판 및 준동을 억제시켰을 따름이다. 만약 우리의 국력이 소진되고 군사력이 형편없이 약화되기라도 한다면 언제라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게 우리의 남북관계다.특히 북한내부에 호전적인 군부실세가 발호하는 시점이면 심각한 양상이 재촉될 수 있다. 물론 냉전시대가 마감되고 남북교류와 협력이 강화되면서 외교, 경제분야 비중이 부쩍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군사 안보 전략적인 차원과는 다른 것이다. 잠재적 위협국이나 가상의 적은 우리의 엄연한 군사적인 적이다. 북한같이 우리에 대한 군사공격 능력을 보유해서 통일작전 개념을 갖추고 공세적 군사배치를 하고 있는 집단에 대해 ‘적’ 개념을 약화시키면 우리는 국가안보를 입에 올릴 이유조차 없어진다.가상의 적도 같은 이치다.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등은 우리의 적국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농후한 가상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군사대국화되면서 해상자위대를 증강한 것은 우리의 어업권을 위협받는 결과임에 틀림없다. 중국도 국경에 군사력을 밀집 배치하고 이미 대만에 대한 시위용으로 우리해역을 통과하는 미사일 훈련을 한바 있다. 러시아의 막강한 핵전력은 한반도를 사정권 안에 두고 있다. 그리고는 툭하면 동해에 핵폐기물을 투기하곤 했다. 우리의 생명줄인 동해를 위협하는 이런 러시아의 행위는 앞으로도 일어날 전망이다.이처럼 군사력이 우리의 안전과 국익을 노리면 분명한 가상의 적으로 간주해야한다. 그런데 지금 이 땅의 현실이 어떠한가. 주변 가상의 적은 고사하고 박혀있던 적의 개념마저 눈 녹은 뒤의 질펀한 풍경을 느끼게 한다. 빨치산투쟁 때 반동가족이라고 잡아온 죄 없는 양민들을 총살하자니 총알이 아깝고, 칼로 죽이자니 피비린내가 싫어서 몽둥이로 때려서 집단참살했다는 민족의 영원한 적인 붉은 전사가 죽어 자유대한 땅에 묻히면서 열사, 의사로 비석에 표기되는 지경까지 와있는 현실이다.그들 무덤 앞에 그 같은 비문을 새기고 추모해 마지않는 세력은 우리의 ‘가상의 적’ 범위가 아닐 것이다. 민족주의로 포장돼있는 이 땅의 가장 위협적인 ‘적’존재가 아닐까싶다. 우리에게 ‘적’의 개념은 이런 사상과 이념의 문제 말고도 있다. 까닭모를 연유로 국익을 무참하게 배반하는 일부 언론테러리즘도 우리는 똑똑히 지켜봤다. 그를 편들고 나서는 잔인한 독선도 보았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숱한 ‘적’의 포진 속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눈앞의 적(敵)은 반드시 퇴치되거나 승복 받아야 할 것이고, 가상의 ‘적’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언제나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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