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방 초등학교 한 학급에 회오리가 일어났다. 그동안 이 학교는 학생 자율권을 보장키 위해 가장 민주적 방식이라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각 학급 반장을 선출해왔다.투표 전에 후보 등록하고, 학급 운영에 대한 소견 발표가 있고, 투표 후 개표 참관 학생들 입회하에 개표하는 방식이 조금도 민주적 절차를 벗어나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서로 편을 모아 반 아이들을 포섭하는 과정도 아주 세련된(?) 모습을 보였다. 평소의 용돈 외에 비자금을 만들어 단체로 떡볶이 같은걸 사먹이는가하면 꽤 영향력 있다고 생각되는 아이에게는 따로 인형이나 장난감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이쯤되면 선거 하루 이틀 전에 대략 당락의 판세가 보인다. 약삭빠른 아이들은 새로 반장될 아이와 눈도장이라도 찍어놓으려고 그 아이 주변으로 몰린다.그런데 한 학급에서 예상 밖의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따르는 아이들이 적어 리더십도 인정받지 못하고, 집이 가난해서 아이들에게 선심공세는 아예 생각도 못할, 그래서 다른 반장후보 아이들이 라이벌 의식조차 갖지 못했던, 그런 아이가 득표결과 반장이 된 것이다. 학급 전체가 술렁거렸지만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새로 반장된 아이의 선거기법이 바람을 일으킨 결과였다.이 아이는 몹시 영악했다. 대체로 공부 잘하고 집이 부자인 아이가 반장이 돼 몇몇 영향력있는 아이들과만 상의해서 학급 일을 주도하는데 대한 학급 내 소외심리를 한껏 자극하는 작전을 펼친 것이다. 작전은 주효해서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 반장에 당선된 이 아이는 학급 리드세력을 새로 구축했다.지금껏 뒤켠에 처져 눈치를 살피던 아이 몇이 학급 조직기구의 완장을 싹쓸이했다. 반장을 중심으로 완장 찬 몇 아이들은 가히 제 세상을 만난 듯 신이 났다. 지금까지 기죽어 지냈던 한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도 했다.하지만 이 같은 기분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비록 완장은 뺏겼지만 학급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던 저편 아이들의 기존 영향력에 절대적 타격이 와서 위축돼가는 빛이 영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완장을 뺏어 차고서도 학급 일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을 뿐더러 겨우 결정된 일을 시행하는데도 저편 아이들의 묵인 없이는 실행이 어려웠다. 반장선거 때, 공부 좀 한답시고, 또 가진 것 많다고 으스대는 꼴이 싫어서 저들을 외면했던 아이들도 점차 다시 저편 아이들과 히히덕 거린다.급기야 주먹다짐이 일어나고 갈아치워야 한다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나돈다. 심각한 고민에 빠진 반장아이는 앞날이 걱정돼서 견딜 수가 없다. 지금은 그래도 반장자리에 있으니까 괜찮지만 내년 새 학년 반장선거에서 이쪽 완장을 다 뺏기게 되면 학교생활이 지옥 같을 것이란 불안이 엄습해온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반장아이는 중대결심을 한다.반장 임기동안에 어쨌든지 학급운영 방식을 바꿔서 불평하는 아이들로부터 찬사를 끌어내는 한편으로 저편 아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계획을 세웠다. 실행방법도 준비했다. 죽을 힘을 다해 밀어붙이기로 하고 자기 덕에 완장 찬 아이들에게 완장 값하라고 독려해서 내몬 결과 학급운영 개혁안이 통과됐다. 편들고 반기는 아이들 숫자도 처음만은 못해도 인기도가 아주 죽을 쑬 때보다는 크게 늘어났다. 반장아이는 또다시 완장부대에 소리친다. 내년 새 학년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완장 값을 곱빼기로 또 해내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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