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한(前漢)시대 빼어난 미모와 춤 솜씨로 무제(武帝)의 마음을 달구었던 후궁 가희(歌姬)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 가운데 가희가 무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꽃 같은 청춘의 나이에 아들 하나를 얻고서는 곧바로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면서 취한 행동은 가히 교훈적이다.가희가 위독한 상태에 놓였을 때 무제는 문병차 그녀 처소를 찾았다. 이때 가희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몸소 거동한 황제에게 얼굴조차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불속에 파묻혀 힘든 목소리로 “저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탓으로 얼굴이 매우 초췌해져 있습니다. 도저히 폐하를 뵈올 수가 없습니다. 부디 제 아이와 친정 가족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무제는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마지막 당부를 하는 가희의 모습이 안타까워 가슴이 저미는 듯했다. 가희가 조금이라도 얼굴을 보여주고 뒷일을 부탁하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제발 마지막 얼굴이라도 볼 수 있도록 이불을 내리라고 간곡히 명했다.그럼에도 가희는 요지부동으로 “아닙니다, 이 얼굴로는 도저히 폐하를 뵈올 수가 없습니다.” 만 되뇐다. 무제는 조금만 얼굴을 보여주면 친정 오라비들의 관직을 높이는 것은 물론 많은 금품을 하사할 것이라고 달래며 어서 이불을 걷으라고 재촉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홱 돌아누워 그 뒤로는 아예 대답조차 않는다. 가희의 이런 무례한 행동에 무제는 분노했다. 화난 모습으로 돌아서는 무제의 뒷모습에 찬바람이 일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친정가족들이 당황해서 가희에게 달려가 왜 황제를 화나게 했느냐며 걱정하는 빛이 대단했다.이에 가희는 가족들을 나무라며 말한다. “폐하에게 얼굴을 보여드리지 않은 것은 가족형제들의 장래를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는 단순히 용모가 뛰어나다는 것만으로 천한 신분에서 지금의 지위에 오르게 된거예요. 대체로 용모 덕에 사랑을 얻은 자는 용모가 초췌해지면 애정이 식어지는 법, 폐하가 지금도 내게 마음을 두는 것은 평소의 나의 용모 탓입니다. 지금 초췌해서 옛날과 전혀 다른 내 얼굴을 보면 당장에 정이 떨어져 두 번 다시 나의 일 따위는 상기치 않을 겁니다. 그럼 더 이상 내 주위 가족들을 돌봐주시거나 하는 일은 믿을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라고.무제는 가희가 죽자 황후의 예로 장례를 치르도록 명했다. 마지막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가희에게 화가 났었지만, 무제는 가희의 아름답기만 했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희의 마지막 부탁을 잊지 않았음은 자명하다. 이 같은 일화는 처음과 평소가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끝 모습을 추하게 나타내면 환멸을 부를 수 있다는 교훈적 가치로 전해진다. 우리는 오늘 2006년 새 역사를 만드는 첫 장을 열고 있다. 모두가 희망찬 새해 덕담을 나눌 때지만, 지금 나라모양은 그렇지를 못하다. 수많은 갈등으로 구축된 전선이 이제 전면적 전투태세로 돌입해있는 양상이다.정의롭고 복된 사회를 강조한 아름다운 명분에 음모의 그늘이 보이고 종내는 밥그릇 싸움의 추한 몰골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 눈에는 세상살이 환멸을 느끼며 혹한 속에 몸을 떨고 있는 국민모습이 보일 턱 없다. 오로지 2006년 한해를 고지 선점 및 탈환을 위한 필사의 전투기간으로 삼은 전열(戰列)고르기가 당면과제일 것이다.물론 아름답게만 들리는 민주주의 법치를 내세우겠지만, 혼란기의 법은 경위와 때를 맞추기가 어려워 차라리 순리를 따르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제발 올 한해 그들 추한 끝 모습을 안 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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