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빚어내는 정치권 움직임을 보면 노무현 정권의 하산(下山)길이 퍽이나 시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길을 밝히는 등촉의 촉수가 그다지 밝을 것 같지가 않다.오르막 오르기보다 내리막 길이 더 힘들다는 것은 다 아는 이치다. 정상을 정복하기까지의 고단함은 내려갈 때의 휘청대는 피로함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때문에 가파른 하산 길에는 준비할 것이 많다. 우선 좀 돌아가더라도 쉽고 편한 길을 찾아야 할 것이며, 돌부리를 피하기 위해 어둠속 등촉도 밝혀야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려가서 충분히 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조용한 길잡이 역할이 꼭 필요한 법이다. 하물며 정권의 하산 길에 있어서야 더할 나위없다. 그런데 정권 후반기가 너무 소란스럽다. 책임있는 정파 보스들은 절망하는 민심과는 상관없이 대권 열기에 들떠서 정치권을 사분오열시키기에 분주하다.자고로 천심을 움직이는 것은 민심이요, 민심을 움직이는 것은 정성이라고 했다. 이 말뜻이 우리네 온 현대사를 들춰 지금처럼 실감을 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스스로 하겠다고 해서 지도자가 된 경우는 없다. 제아무리 사람됨이 출중하고 능력이 뛰어나다해도 민심을 얻지 못한 자가 치국(治國)에 성공한 예가 없을뿐더러 백성을 위해 정성을 다하지 않은 자가 민심을 얻는 일 따위는 꿈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국민을 무시하기까지 하는 정치지도자가 언필칭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은 도대체가 어불성설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많은 국민들이 정치허무주의에 빠져 현실정치에 아주 무관심해진 점을 일부 정치권이 오히려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일 정도다. 만약 그렇다면 엄청난 오산일 테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없어 하는 것은 현실의 이 땅 정치가 국민에 대한 정성을 배반하고 있는 증좌로 나타날 뿐, 바른 국민속내는 전에 없이 정치권 소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한다. 장관 할 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던 두 사람이 당에 복귀하자마자 실정책임론을 놓고 분열해서 격돌하는 모습에서나, 김빠진 40대 기수론이 나오고, 누가 무슨 파를 이끌고, 누구의 당내지분이 크다는 등 계속 잠룡들 수를 늘릴 전망이지만, 국민 관심권과는 영 거리가 멀다.‘깃발만 보이고 군중이 없는 정치’,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다. 거기다 집권세력의 옹골찬 야심은 가슴 철렁했던 지도자 양육론까지 떠올려 놓은 마당이다. 이 대목에서 민심에 아랑곳 않는 노 정권의 의지가 읽혀진다. 조용한 하산 길은 애초부터 원치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돌부리를 걷어차고 흙탕물에 발을 더럽히더라도 반드시 개혁자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탐험가적 정신마저 읽혀진다. 역설적으로 위기의식의 표출일 수도 있다. 어떻든 국가정치가 국민을 뛰어넘지 못하는 사리(事理)는 자명한 것이다. 정치가 국민을 타넘을 수 없는 것은 모든 정치권력의 모태가 국민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선정치는 심각한 정치 패륜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효자집안에 대이어 효자가 난다. 가풍과 성장과정의 정체적 가치일 것이다. 나라 정치풍토 또한 한가지다. 독선과 아집으로 밀어붙인 성과는 반드시 이를 본받은 후일의 정치세력에 의해 여지없는 파손을 입게 되는 인과응보를 인식해야한다.옳은 정치가 따로 있지 않다. 국민에게 정성을 다하는 정치, 태고이래 만백성이 원해온 바다. 민심 속에 잠룡이 잉태됨도 불변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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