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군주 시절의 왕권은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못할 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사리나 법도에 어긋나는 일도 권도(權道)로 행하면 됐다.나라 안 땅 한 뼘도 풀 한 포기조차도 임금것 아닌게 없었으니 백성들 목숨 또한 왕께 바쳐져 있지 않는 생명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 왕에 대한 충성이 효도를 앞질러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더구나 임금은 무치라고해서 천지간에 부끄러울 일이 없었다. 이런 세상이면 왕은 천하에 개망나니 짓을 해도 무방했을 만하다. 쿠데타 세력에 의해 쫓겨나지만 않았으면 폭정으로 유명했던 연산군이나 패륜을 서슴지 않았던 광해군도 당당히 열성조의 반열에 들어 흡족한 종묘제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 외에도 숱하게 일어났던 반정 모의나 쿠데타들이 더 성공했다면 가려진 왕의 치부들이 후세에 더욱 적나라하게 전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반면 엄격한 치도는 그렇듯 하늘이 놀랄만한 왕권으로도 거스르지 못할 구석이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밀실정치의 폐단을 막기 위한 독대(獨對)의 불가함이다. 독대 불가론은 임금과 신하가 밀실에 단 둘이 앉아 정사를 논할 수 없다는 치도다. 정사를 보면서는 반드시 승지와 사관을 배석시켜 군신간의 대화 내용이 빠짐없이 기록되고 전해지도록 했다.정치가 투명치 못하면 야합이 빚어지고 독선의 맹독을 발휘하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또한 밀실의 독대는 이미 떳떳치 못한 상황임을 전제하는 까닭에 거리낄 것 없는 왕권에서도 이를 불법과 탈법으로 못 박아 놓았던 것이다.그런데 주권재민의 민주정치가 곧잘 이 같은 독대의 합의를 꼬인 정국현안을 푸는 최선의 수단으로 선택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쌍방의 합의주장이 때로 새로운 불씨가 되어 타오르기도 한다. 그런 말을 했느니, 안했느니 해서 정쟁의 골이 더욱 깊어졌던 예가 우리 현대사에 적지 않았다. 분명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둘 다가 국민을 속이는 말을 해도 아무도 들은 사람, 기록한 사람이 없으니 진실을 확인할 방법은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다만 국민이 바보 되는 수뿐이었다.자칫 혹세무민(惑世誣民)할 술수가 이렇게 버젓이 민주적 타협정치의 한 방편으로 돼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걸 공박해서 바로 잡으려는 기색은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야합정치를 통박하면서도 독대의 해악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정치는 한 나라의 역사를 창조해가는 행위다. 따라서 통치자는 역사의 한 중심축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통치자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라도 베일에 가려질 수 없는 법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라 정치행위의 어느 한 부분에서도 왜곡당하거나 기만당해서는 민족의 바른 역사를 만들 수가 없다. 주머니 속 송곳은 언젠가는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밀실의 독대로 마련한 정치 흥정, 흥행물이 한순간은 상생의 타협정치로 포장 될 수 있다. 그러나 겉포장이 세월의 비바람을 이겨내지는 못한다.공명정대하다는 것은 밝고 떳떳함을 말한다. 하늘을 대리한다고까지 천명했던 지엄하기 그지없는 왕권의 치도에도 독대정치를 허용치 않은 배경을 투명정치를 부르짖는 작금의 우리 정치권이 정말 모르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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