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공천 잡음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만큼 면역이 생긴 탓인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뿜어내는 공천 소음 열기가 뜨겁다 못해 폭발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수위에 와도 불 끌 대책은 전혀 안 보인다.특히 자신들 텃밭이랄 영남일원에서 일으키는 한나라당의 공천 잡음은 정권 대안세력을 자임하는 제1야당의 자질에 회의를 느끼게 한다.후보 간 대립이 치열할수록 공천자 발표가 당초 일정에서 후퇴하고 있는 까닭을 아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일찍 공천자 확정을 하고나면 탈락 인사들의 반발로 지역 당원들의 탈당 도미노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또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전선이 사분오열되는 것도 우려할 만하다. 공천 신청자들 가운데는 낙천할 경우 벌써부터 당을 바꾸거나 무소속 출마의 배수진을 친 경우가 적지 않다. 중앙당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최대한 발표 시기를 미뤄서 낙천자들이 적대적 방향모색을 시도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줄여보겠다는 계산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지 발을 묶어놓을 방법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지만, 그전에 이미 한나라당의 텃밭 균열은 시작된 정황이다. 말썽있는 상당 지역은 공천 탈락 후 공천 과정을 문제 삼을 뿐 아니라 한나라당 표를 깨기 위해서도 후보 등록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대단하다고들 한다. 한나라당이 드러내놓고 믿고 의지하겠다는 영남권 표밭마저 이렇게 찢어지고 뭉개질 조짐이 농후한데는 분명한 책임 소재가 있을 줄 안다.시장 공천에 나선 어디의 누구는 오래전부터 자기부인을 지역 국회의원 집으로 보내 잔심부름을 도맡게 했다는 설이 파다하고, 어떤 곳은 또 공천 신청은 요식행위나 들러리에 불과하고 내막은 공천이 미리 짜여있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다가, 제법 그럴듯한 돈 얘기까지 일부 흘러나온 마당이다. 한나라당의 중심축이 뒤흔들릴만하다. 그럼에도 광역단체를 빼고는 내 지역 공천에 간여할 권한이 절대적이라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모처럼 봄기운을 만끽하는 모양인데 지역민심은 봄철 아니게 얼어붙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한나라당 하는 짓이 영 시덥지 않다는 반응이 진작이었던 판에 자신들 텃밭임을 방심해온 영남 땅 본거지까지 투영되는 한나라당 몰골이 대충 이러하다. 국민을 찢어놓은 현 정권의 딜레마를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 어쩌자고 한나라당이 제 살 깎기에 그처럼 몰두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당 지도층 리더십을 주목해보지만 조금도 단호하고 시원해 보이는 구석이 없다. 다만 대권구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각축의 모습만 나타날 뿐이다.일찌감치 한나라당의 한계를 느낄 지경이다. 차떼기당의 조소에 천막당사로 화답해서, 탄핵 역풍에는 단기필마의 눈부신 용맹으로 오늘의 한나라당을 일으킨 그 용기와 배포는 다 어디로 가고 다시 웰빙정당의 냉소를 사기에까지 이르렀는지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텃밭마저 찢어 놓고서는 5·31 지방선거가 당세 급락의 분수령이 되고 말 것이란 위기감이 내심 없지 않을 텐데 말이다.마땅한 방법이 없다. 한나라당이 어떤 방식이든 이번 지방선거 공천권을 투명하게 행사치 않으면 내부 와해는 필연적일테다. 나라의 위기는 외부 침략보다 내부의 와해에서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정당조직 역시 이치가 다를 까닭이 없다.더 무섭고 중요한 일은 한나라당이 국민의 나무라는 애정 또한 잃을 때일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