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마지막 사활을 걸고 대치해있는 ‘사립학교법‘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대승적 양보를 주문했던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다.그동안 사립학교법 장외투쟁을 주도했던 박근혜 대표에게 있어 지방선거 목전의 사학법 재개정 관철은 법 개정 이상의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박 대표의 대권고지를 향한 중대한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가 날치기 무효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박대표의 투쟁은 의외로 여론의 힘을 얻지 못했다. 장외 투쟁의 열기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등원 병행투쟁을 요구하는 당내 반발 움직임이 속출했었다.그러나 박대표는 굴하지 않고 의원총회에서 흘린 단한번의 눈물로 당내 반발기류를 말끔히 정리해내는 정치력을 보였다. 이렇게 성과 없이 막 내린 박근혜식 사학법 투쟁이 4월 국회 말미에서 다시 최대 쟁점법안으로 불붙어 국회파행을 가져왔다. 하마터면 민생 국익법안 처리를 지연시킨 파행책임을 박대표가 뒤집어 쓸 판이었다. 이런 찰나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듬직한 구원투수가 나타난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의 작심한 듯한 ‘대승적 양보’ 발언은 한나라당과 박대표 앞에 놓인 늪을 일거에 걷어냈다. 한나라당의 즉각적인 노대통령 엄호반응은 하룻밤 새 여야가 뒤바뀐 것 같은 착각을 부를 정도였다.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제1야당이 집권여당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는 사상초유의 괴이한 정국이 빚어진 것이다. 이런 모호하고 당혹스러운 열린우리당의 입장이 당 지도부를 매우 초조하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화답이 지난 2일의 6개 법안 강행처리 결과로 나타난 셈이다.그럼 왜 노무현 대통령이 그때까지 국회파행의 중심에 서있던 한나라당 박대표에게 열린우리당을 곤란한 상황에 몰아넣으면서까지 구애를 일으켰느냐 하는 점이 무한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대승적 양보의 전제는 아군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라는 데서 더욱 그렇다. 일각에서는 ‘제2의 대연정 쇼크’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은 노대통령이 혼자 결단하고, 열린우리당의 처지를 어렵게 했다는데서 종전의 대연정파동과 흡사하다는 골자다.노대통령이 대승적 양보를 요구했던 바로 전날의 청와대 당정핵심 모임에서는 사학법은 예정대로 오는 7월 1일 시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1년 내에 재개정한다는 입장정리였다. 그런 것이 하루 만에 다시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해서 열린우리당의 대승적 양보를 주문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의 이재오 대표도 청와대와 여당이 사전 각본에 따라 움직인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그러면 이 시점에 노대통령의 깊은 속내가 따로 있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국회 파행운영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이번 양보발언 파문으로 확실해진 두 가지 큰 변화를 주목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예사롭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온다. 국정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야당과의 관계를 전에 없이 고민하는 모습은 변화이기 이전에 국민이 갈망 해온 바다. 반면 열린우리당이 이제 대통령 말도 무시하는 이상한 여당으로 비춰진 변화는 어떤 설명으로도 득보다는 실이 큰 부담일지 싶다.지금 나타나는 5·31지방선거 분위기마저 대략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외면하는 판세다. 여기에 서울시장 경선투표에 투표권을 가진 당원 95%이상이 불참하는 불행한 진기록이 마련됐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숨은 속내를 더 확연하게 드러낼 가능성이 짙다. 대통령 자신이 만든 열린우리당이 대통령 말을 듣지 않을 정도가 됐는데 탈당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가질만하다. 또한 당을 통해서 애써 후계자를 내세우겠다는 생각도 접을 수 있을 것 같다.2007년 대선 페어플레이를 명실상부하게 이끌어내는 절대적 조정자 역할이 훨씬 매력 있게 노대통령 마음을 사로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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