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31 지방선거가 집권당 사상 최악의 참패로 끝이 났다. 아니 참패했다는 말보다는 정권에 대한 민심 탄핵이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상대는 어제까지도 온갖 추문을 생산해내고 부패와 비리 사건에 휘말려 하루가 멀게 국민 앞에 사과 성명을 내고 석고대죄를 청했던 한나라당이었다. 그런 한나라당에 끽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고 처절할 정도로 무릎 끓고만 열린우리당이 이제 심한 내홍에 휩싸일 전망이다.열린우리당이 모태(母胎) 민주당을 향해 지역 정서에만 의지한 반개혁 세력과는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며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딴살림 차려 나선 것이 불과 햇수로 3년 전이다. 노 대통령 탄핵 역풍몰이에 성공해서 전두환 군사정권 이후 사실상 첫 여대야소 정국을 회복한 열린우리당의 기세가 이렇듯 단 기간 내 꺾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다.당락을 떠나 명색이 집권당 표가 한나라당 득표수에 평균 절반에도 못 미친 현실을 놓고 스스로 또 어떤 생각을 할는지도 궁금하다. 국회임기가 아직 2년 가량이나 남아있으니 말이다. 지난달 29일은 이 땅 국회가 개원된 지 58주년 되는 기념일이었다. 마침 이날이 김원기 국회의장의 임기 마지막 날이기도 했었다. 김 전의장의 고별사가 가슴을 찔렀다.그는 고별사에서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10%대로 추락할 만큼 국회 불신이 높아진 이유를 낡은 정치의 마지막 장벽 때문이라고 했다. 그 장벽을 ‘대통령 권력 지상주의’로 표현한 김 의장은 대통령 권력을 쟁취하는데 도움 되면 국회에서 어떤 작태를 해도 괜찮고 상대에게 어떤 흠집을 내도 상관없다는 반민주적 사고방식이 국회에 팽배하다고 지적했다.국회가 대통령 권력 절대주의에서 해방돼 자신의 가치를 높일 줄 모르면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통째 외면당해서 여야 없이 공멸할 뿐이라는 그의 충고가 지금의 여야 국회의원들 귀에 닿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선거 기간 내내 주장했던 것은 부패한 지방권력을 심판해 달라는 것이었다. 패색 짙은 선거 막바지쯤에는 싹쓸이만은 막아달라는 절규였었다. 또한 ‘평화, 민주, 개혁 세력’을 국민이 지켜달라는 눈물겨운 읍소를 하기도 했다.그럼에도 국민은 한나라당을 겨냥한 지방권력 심판론에 한 점 동의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국민은 결과적으로 ‘평화, 민주, 개혁 세력’(?)에 대한 ‘반평화, 반민주, 반개혁 세력’(?)을 자임하고 택한 꼴이 되고만 셈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그 까닭이 열린우리당의 종래 국회운영 모습과도 절대 무관했을 리 없다.물론 대통령 권력 지상주의가 국회 권력의 장벽이 된 지가 어제 오늘 일은 분명히 아니다. 또 여권 정치의 탓만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 책임정치의 근간마련은 엄연한 여당 몫임에 틀림없다. 이런 관점에서 선거에 완패한 열린우리당이 위기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난파선이 되고 말지의 여부는 그들 집단에 패배자의 잠재력이 과연 남아있느냐가 첫째 관건일 것이다.패한 집단의 잠재력은 패장의 책임을 철저히 통감토록해서 자리를 사퇴토록 만드는 것이 중요치 않고 다만 초심을 회복하는 자세일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