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물폭탄이 걷히자마자 하늘은 우리를 다시 폭염의 찜통더위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사람 살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냐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가마솥더위는 당분간 더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이런 때 나라 정치라도 좀 시원한 구석이 보이면 얼마나 좋으랴만 우리 정치판은 소모전으로 달군 열기만을 더 내뿜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딱 한 가지 뚫린 구석이 있다면 국민 관심 밖에서 치러졌던 지난 7·26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일 것이다. 탄핵 주역으로 내몰렸던 민주당의 조순형 전대표가 거대 양당을 무력화시키고 다시 국회로 돌아온 사건은 선거에 대한 국민 관심권과 상관없이 작금의 민심을 통째 웅변했다는 의미가 부여될 만했다. 조 당선자가 7·26선거에 공천신청을 했을 때 여론의 반응은 두 갈래였다. ‘이제 현실정치에 복귀할 때가 됐다’라는 긍정기류와 ‘한국정치를 퇴보시킨 장본인이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또다시 정치판에 뛰어 든다’라는 상반된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망설임 없이 선거판에 몸 던진 그가 어렵게 여의도 재입성에 성공하자 보수진영은 한목소리로 ‘탄핵의 정당성’이 입증된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정작 조 당선자는 이번 선거기간동안 자기 이름 앞에 ‘탄핵주역’의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것을 퍽 부담스러워했었다고 한다. 이는 조 당선자 스스로가 탄핵의 정당성을 심판 받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을 뿐더러 탄핵시비가 되살아나는 자체를 경계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조순형의 당선을 굳이 탄핵과 연결 지으려는 속내가 분명하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입지를 더욱 절박케 할 목적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선거패배의 그림자를 ‘탄핵정당성’ 입증 주장으로 깔아뭉개서 정국 주도권에 상처를 내지 않겠다는 판단일 것이다. 민주당 또한 절치부심했던 최상의 호재를 엄청나게 부풀려 만끽할 수 있는 절대적 호기로 계산됐을 것이다. 열린우리당 내 민주당으로의 백기투항이 곧 시작될 것이란 전망도 하고 있다.

이처럼 열린우리당의 퇴로가 보이지 않을 때 한나라당의 수해지역 골프파동이 일어났다. 열린우리당이 이를 천재일우의 호재로 안 삼았을 리 없다. 한나라당의 웰빙정당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데 총력을 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열린우리당은 한술 더 떠 인천지역 현역 의원들이 수재민들의 통곡소리를 뒤로하고 단체 골프외유까지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그 참에 또 교육부총리 사퇴파문과 ‘법조비리’수사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정면충돌 사태가 빚어지고 이어 역대 국방장관들이 다 일어나 국가안보위험을 공식 경고하고 나섰다. 하늘이 하는 일, 땅위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가 우리를 숨 막히도록 하는 상황이다. 이대로 질식하지 않으려면 어딘가 속 시원한 구석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다. 이번에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온 ‘Mr 쓴소리’ 조순형을 주목하는 이유가 이런 속마음과 무관치 않다. 민족지도자 고 조병옥 박사의 피를 이어받은 그가 6선의 길을 걸을 동안 얻은 평가는 아주 소문나있다. 때문에 그가 어떤 형태든 정치권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는 것이다. 그것이 특정 세력과 연대한 헤쳐모여식 정계 개편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도 정치판의 시원한 구석을 보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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