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수사’도 아닌 ‘사건 접수’ 수차례 ‘거부’

강남경찰서. [뉴시스]
강남경찰서.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2019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다. 바로 버닝썬 게이트. 버닝썬을 둘러싼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면서 가수 정준영은 몰카 촬영·유포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정부는 몰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시민들은 드디어 몰카 범죄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모양새다. 아직까지도 몰카 가해자는 철옹성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강남경찰서에서는 몰카 범죄 의심내용이 있음에도 피해자의 사건 접수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마포경찰서에 고소장 제출···마포서강남서로 사건 이관?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두려움에 떨어야하나요.” 이는 영화의 대사가 아니다. 이른바 몰카(불법촬영)’ 피해 가능성이 있는 20대 여성이 강남경찰서에 신고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경찰의 답변을 듣고 사회에 전달하는 메시지다.

앞서 20대 여성 A씨는 금년 초,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을 통해 한 남성을 만났다. 다정하고 착한 성격을 가진 남성 B씨와 짧은 시간에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세 달 사이, 같이 미래를 계획할 정도로 관계가 깊어진 가운데 A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성의 포털사이트 클라우드(Cloud·인터넷 파일 관리 서비스)에서 불법촬영으로 보이는 사진과 동영상 수십 개를 목격한 것이다. 여기에는 성관계를 맺는 동안 녹음된 음성녹음 파일까지 있었다. A씨의 눈에는 여러 여성들의 나체가 담긴 사진·동영상이 흘러갔다.

자료에는 B씨의 얼굴이 나오진 않았으나 손 형태와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지난해 초부터 금년 초까지 업로드 된 자료였다. 이후에 업로드 된 자료에는 랜덤 화상채팅 어플에서 여성들 몰래 다른 휴대전화로 은밀한 신체를 촬영한 동영상도 담겨있었다. 이 때 A씨는 B씨가 휴대전화를 두 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A씨는 충격에 빠져 급하게 사진·동영상 몇 개를 확보했다. B씨에게 증거를 제시하며 추궁하자 B씨는 불법촬영 사실을 인정했다. 도리어 A씨의 휴대전화를 몰래 살펴보거나 주변 친구들까지 질투하던 B씨가 이러한 일을 벌인 것이다.

A씨는 “B씨가 교제 초창기부터 항상 나를 의심했다. 그러다가 서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공유하게 됐다. 그의 휴대전화는 이상할 만큼 깨끗했다. 사소한 일상도 공유한다는 친구들 대화방 마저 항상 없던 상태였다면서 사건 발생 하루 전 미처 지우지 못한 친구들과의 대화방이 있었다.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찝찝한 마음에 결국 클라우드를 보게 됐다. 무음 설정이 가능한 카메라 앱으로 여러 여성을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촬영 인정했는데...

며칠 후 A씨는 신고하기로 마음을 먹고 강남경찰서에 방문했다. 그러나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사건 접수조차 해주지 않았다. 경찰은 A씨가 급하게 확보한 자료에 본인의 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했다고 한다.

A씨가 자세한 경위를 설명했지만 경찰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의 말만 되풀이 한 뒤 돌려보냈다. 이후 A씨는 B씨에게 이런 일을 벌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B씨는 남자의 단순한 호기심”, “야동의 일부”, “하룻밤 잔 사이인데 나중에 나에게 피해가 갈까봐 녹음·촬영을 한 것등의 말을 당당하게 늘어놓았다고 한다. ‘합의 하에 찍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했다.

A씨는 다시 강남경찰서에 연락을 취했다. 이러한 내용을 전달하자 또 다른 관계자도 그런 게 있어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A씨가 피해를 당했을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B씨에게 연락을 해서 꼬드겨 보라(자료를 직접 더 확보하라)”, “(사진에 있는) 피해자(여성)들을 찾아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A씨는 여러 사진 속에 있는 한 여성을 직접 찾아내 연락을 취했다. 이 여성이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여성은 A씨에게 사건 접수가 안 되면 내가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자료를) 이 여성이 발견한 게 아니고 A씨가 발견한 것 아닌가. 또 이 여성의 몸이 사진 속에 있는 지 확실한 게 아니라서 안 된다고 또다시 거부했다.

실적주의인가

A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친구의 제의로 마포경찰서에 방문했다. 이 곳에서 사건 접수를 하고 고소장까지 제출 할 수 있게 됐다.

최근 대구 수성경찰서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여학생 기숙사 탈의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지역 모 의과대학 재학생 C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C씨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군인 D씨 등 3명은 같은 혐의로 군 당국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자들이 여학생들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대구지방경찰청에 신고하면서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무려 3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경찰은 D씨의 휴대전화에 이 같은 동영상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들의 휴대폰·컴퓨터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다.

A씨에 따르면 마포경찰서의 태도는 같은 서울에 있는 강남경찰서와 너무나 달랐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귀찮은 듯이 설명했지만 마포경찰서 관계자들은 현행법상 처벌이 조금은 힘들 수 있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수사해보자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국선변호사 선임도 지원했다.

이렇듯 강남경찰서는 실적주의’, ‘유행 사건 중심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A씨는 사회적으로 성범죄 문제가 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하는데 정작 많아서 귀찮다고 하는 식의 경찰의 태도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미미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여성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을 안 해주는 것 같다면서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사진에 본인이 없으면 된 거 아니냐고 말하더라. 만약 나의 사진이 그 자료에 없다고 해도 다른 피해자들이 있는 건데도 피해자들을 일일이 어떻게 찾냐는 식의 태도를 보이더라. 규제나 법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A씨의 거주지가 강남권인 탓에 마포경찰서에서 강남경찰서로 사건이 이관된 것이다. 과연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앞서 몇 차례나 강남경찰서에 거부를 당했던 A씨는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보복범죄가 일어날까 두려워 고소를 취하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여러 내용과 관련해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오늘(20) 아침에 접수(사건 이관)됐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얘기다. 접수가 됐으니 (초기에 대응했던 수사관 외) 다른 수사관에게 배정을 해서 잘 수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사이, A씨를 비롯한 많은 몰카 범죄 피해자들은 2차 피해(보복범죄)의 우려로 어느 곳에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가 불법촬영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모양새다. 경찰의 안일하고 미온적인 대처에 피해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형국이다.

한편 강남경찰서는 일요서울 취재가 시작되자 제대로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피해자에게 전달했다.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수사과장급이 직접 나서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향후 강남경찰서의 수사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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