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개구쟁이 노릇하던 아이 때 반 아이끼리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선생님께 누구는 더 혼나고 또 누구는 덜 혼났던 기억이 더러 없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이 혼난 아이는 평소 하늘같이 보인 선생님도 공정치가 못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을 것이다. 패배의식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반면 덜 혼난 아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월감을 싹틔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다 자란 어른 사회에서도 변함없는 철학으로 굳어진 바다. 17대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71명이 각종 범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고 그 가운데 20명은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는 ‘2006년 6월말 현재 국회의원 재판 계류 현황’이 국회에 제출됐다. 4·15총선 때의 선거법 위반 48명, 정치자금법 위반 14명, 뇌물수수와 명예훼손 등으로 11명의 국회의원이 피고인석에 섰는데, 두 개 이상의 법 위반으로 중복 기소된 의원도 2명 있었다.
자료 분석 결과 현역의원 선거법 위반에 대한 ‘온정주의’의 대표적 사례였던 벌금 70~80만원대와 시간 끌기 재판 지연은 아직도 변함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대다수가 그같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선거법 이외의 재판에서는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금고 이상의 형’을 1,2심에서 선고받고도 대법원 확정판결이 1년 이상이나 지연되고 있는 사례가 8건이나 됐다.
선거사건 재판은 3심 확정판결까지 6개월 이내 종결하겠다던 대법원의 공언도 지켜지지 않아 재판을 1년 이상 끈 경우도 9건이었다. 같은 사건의 재판에서 마치 천당과 지옥으로 비유될 정도의 극한 편차를 보이기도 했다. 심각한 형평성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광고편의를 봐주고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열린우리당 배기선의원은 올해 2월 징역 5년을 선고받고도 법정구속을 면한 채 항소하여 의정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같은 혐의였던 한나라당의 강신성일 전의원은 벌써 지난 해 2월에 구속 돼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여야 간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도 남을 일이다.
그 외 열린우리당 이호웅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지난해 1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의원이 같은 시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1심 선고를 받았지만 겨우 며칠 된 지난 14일에야 이 전의원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을 뿐 김의원은 이후 지금까지 20개월째 재판중이다. 그사이 국회의원 임기 4년의 절반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만약 이호웅의원이 열린우리당 소속이 아니었고 김홍일의원이 김대중 전대통령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도 결과가 같을 수 있었을지가 무척 의문된다.
돈이 ‘제갈량’ 노릇하고 돈 있고 권력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형평의 원칙 어쩌고 하는 따위가 얼마나 공허로운 것인가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의 법대(法臺)마저 대쪽 같은 양심을 지켜내지 못하면 밀물처럼 밀려드는 우리 서민사회의 패배감과 곡절 있는 피해의식을 달랠 방법이 없다. 턱없고 못난 우월감이 더욱 이 나라를 망쳐놓을 따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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