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58년 동안 정국 격변기마다 죽순처럼 난립했다가 곧 역사 속으로 묻혀버린 정당들 이름을 다 기억할 수가 없다. 그 가운데는 군사독재권력이 정통성확보와 집권 들러리를 위해 태동시킨 사쿠라 관제야당도 있었고, 공천 장사를 서슴지 않았던 정상(政商)집단도 적지 않게 존재했었다.
80년대 이후로는 연고중심사회의 지역주의를 근간으로 한 지역정당이 꾸준히 지역감정을 부추긴 데다, 당내 세 불리해서 당을 뛰쳐나온 지역계파보스의 대통령병에 의해 급조된 패거리 신당이 이런 지역적 정서를 칼끝같이 자극시켜 이 땅 정당사를 왜곡시켜놓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새 정당이 생겨나서 새 이름 찾기가 힘들만큼 우리 정당역사는 일견 화려해 보이고 다채롭지만 그 많았던 정당들에 얼마나 확고한 정통성이 있었고 뚜렷한 정체성을 가졌었는지에 대해서는 눈을 씻고 봐야할 처지다.
현실 정당에 이르기까지 이 대목에서 신망받지 못한 결과는 이 땅의 정치 불신 풍조의 만연현상으로 나타났다. 집권여당으로 태어난 열린우리당의 태동과정을 모를 사람이 없다. 제1야당 모습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 뿌리를 기억 못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또 지난 17대 총선이후 한나라당이 몇 차례 있었던 재보궐선거를 휩쓸고 지방선거에 완승할 수 있었던 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 기대와 지지가 높아서였다고 강변할 사람이 흔치는 못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국민지지도 40%대를 대놓고 기꺼워할 수 없는 맥락이 이와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양당의 연합이나 최소한 제휴를 뜻하는 공조필요성이 제기된데 이어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반(反)한나라당 연합추진을 주창했다. 고건 전총리도 연말 정치권 새판짜기에 적극 호응할 움직임이다. 이에 맞춰 갖가지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지금 같은 모양으로는 누구도 내년 대선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소수민주당이 정계개편론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이유가 열린우리당이 호남 텃밭장악에 실패한 까닭이다. 호남 지지기반의 확실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 끌어들이기가 곧 대선고지와 맞닿는 것이라는 인식확산이 여야정치권의 새판짜기를 더 가속화시킬 공산이 짙다. 물론 구심점이 취약한 열린우리당의 절박감이 더할 것이지만 한나라당도 호남을 완전 불모지로 남겨놓고는 대선승리가 어렵다는 교훈을 두 차례 대선실패를 통해 익히 터득한 바다. 그러므로 올해 긴 추석연휴 민심에 정치권이 바짝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연말쯤이면 짝짓기의 실물형체를 구경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 상황일 것이다. 밀실의 빅딜 같은 이상한 짝짓기로 괴물이 탄생될 공산도 없지 않다. 이념적 접목이냐 지역연합형태로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짝짓기 형태가 아주 고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파 우파의 이념대결 양상은 이 나라 정당사를 반세기 이상이나 후퇴시켜서 21세기의 국민을 첨예한 대립구도로 갈라놓은 마당이다. 그 판에 지역끼리 연합하는 짝짓기 형태는 국민을 어느만큼 더 찢어 놓을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질 노릇이다.
모르긴 해도 이번 추석연휴에는 국민통합을 위한 정책정당의 연말 짝짓기를 기대하는 국민여론이 주류를 이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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