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 국민들 소위 재야 정치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소리가 있었다. 시대에 관계없이 그들은 언제나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를 좌우명으로 삼는다고 진부한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러나 세월 지나고 보면 그들에게 ‘어떻게 살았느냐’는 그다지 중요치가 않았다. 어떤 반칙을 하더라도 ‘무엇이 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반드시 무엇이 되기 위해서 개혁이란 허울 밑에 국민을 쪼개고 찢는 선동정치도 불사했다. 그들 세력은 가진 자들 앞에서 정당한 권리주장을 할 수 없었던 못가진 자들의 주눅든 삶의 무수한 편린들을 고스란히 쓸어 담아 지지층으로 쌓아냈다.
가공스러운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청와대가 모처럼 전직 대통령의 다른 말을 경청토록 했다. 그 외의 여러 목소리들에도 귀를 닫고 있을 수만 없도록 만들었다. 작통권 문제를 다시 챙겨보겠다는 노대통령의 풀꺾인 답변도 오랜만에 들었다. 김영삼씨는 김대중씨와 노대통령 면전에서 두 사람의 북한 미화시키기와 퍼주기에 대한 대국민 공개사과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노대통령더러는 ‘북한 미사일발사 때 방어용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노대통령이 북한의 변호사냐’고까지 따졌다고 한다.
그런데 김대중씨는 햇볕정책이 총체적 파탄에 빠진 이 시점에서도 ‘햇볕이 무슨 죄냐’며 북한 달래기를 계속해야한다는 강변을 쏟는다. 북측이 “최후에 누가 웃는지 보자”며 호기를 부리고 국제 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채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었던 데는 햇볕정책이 절대적 기여를 했다는 인식이 세상 지배적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계속 세상을 오도하겠다는 심산 같다. 햇볕정책이 김대중 개인의 노벨평화상 수상 말고는 남긴 것이 산더미 같은 국가 부채와 남남(南南) 갈등뿐이라는 많은 국민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노정권이 북한문제에 대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되뇌고 조건 없는 옹호론을 펴왔지만 북은 끝내 곁을 주지 않았다. 다만 남은 북이 어떤 불장난을 쳐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임이 만천하에 확인돼버렸다. 쏟아 부은 밑천생각에 다들 밤잠을 설칠 지경이다. 이 정권이 별도의 제어수단을 마련할리 없을 것이란 점을 누구나 아는 터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것이다.
우리가 북한제재에 앞장서지 않으려면 최소한 국제사회의 대북한성토에 귀라도 기울여야 외교적 미아 신세라도 면할 것 아니겠는가? 또 국내 문제에 귀를 열어 민심 흐르는 소리를 제대로 듣는다면 의외로 북한 핵장난이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안보 관념을 재정비토록하고 국민을 단결케 하는 촉매적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북의 도발을 억제할 방법은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에 차있는 국민의 단합된 힘이다.
지난 9일 ‘100일 민심 대장정’을 끝내고 돌아온 손학규 전경기지사는 ‘국민들이 당장 어려운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어 더 힘들고 어려워한다’면서 정치가 국민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국민이 일자리, 교육, 노후, 주거 문제 등 4대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 정치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정권이 귀부터 열어야 할 것이다.
귀를 열고 물 흐르는 소리를 들어야 물가의 동정(動靜)을 알고 물깊이를 짐작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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