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대연합방식 정계재정비를 주장했다. 김 의장은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과거 민주당 지지자들이 분열한 것이 현 여권비극의 씨앗이라는 김대중씨 지적에 전적인 공감을 표했다.
종전까지 열린우리당을 이끌었던 정동영 전의장까지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국민과 유리됐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자인했다. 불과 3년 전에 “최소한 30년을 집권하고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자”고 민주당을 깨고 나가는데 앞장섰던 인물이 누구였는가를 모를 사람이 없다. 그런데 김대중씨 말 한마디에 또 이렇게 넋 나간 듯한 장단을 맞추는 것이다.
온 국민이 북한 핵 불장난을 규탄하며 퍼붓기 식 대북 포용정책의 무망함을 성토하고 나섰을 당시 이들 여권수뇌부도 대북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입장정리를 하는 듯 보였었다. 그런 것이 김대중씨의 자신 생애 전부를 건 ‘햇볕사수’ 행보가 외풍을 일으키며 호남민심을 자극하기에 이르자 수뇌부를 포함해서 여권태도가 어떻게 돌변했는지는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김대중씨가 영향력 강화를 위해 여권의 분열을 노린다는 일부여론의 지적이 틀린 말이 아닌 모양이다. 정치는 관여치 않겠다던 김대중씨가 구심점 없는 열린우리당 상황을 노려 정계개편을 주도한다는 시각이 공공연해있는 마당이다. 즉, 아직까지 ‘김대중 선생님 사모곡’이 끝나지 않은 호남외풍으로 여당 내풍을 더 강풍으로 몰아갈 것이란 이야기다. 얼마 안 있으면 전남 출신 국회의원들이 줄 탈당할 것이란 언론 진단도 있었다.
그런 차에 열린우리당 전 현직 당의장 두 사람이 앞 다투어 열린우리당 창당이 여권 비극의 씨앗이 됐음을 만천하에 천명했으니 집권당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풍전등화 신세가 돼버렸다. 국회의원 141명의 강력 여당이 호남맹주의 말 한두 마디에 그렇게 거리낌 없이 무너질 수 있는 현실이 너무 놀랍고 기차다. 이마저 민주적인 것으로 강변되기가 십상일 터이니 더욱 두렵기조차 하다.
김근태 의장이 조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성공단에 가서는 북안내원에 이끌려 더덩실 춤을 춘 것이나, 정동영씨가 어떤 경우에도 포용정책의 근간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내심 김대중씨 의중에 더 가까이 들려는 의도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칭 대선주자란 점 때문이다. 기히 열린우리당의 100년 정당 꿈이 거품 돼버렸으니 열린우리당을 깨고 또 새로 만드는 정당에서 확실한 김대중씨 적자 지명을 얻어내겠다는 심산이 작용 안 할리 없을 것이다.
이합집산으로 부글대는 거품 속엔 또 다른 거품만 일게 되는 이치 따위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다만 열린우리당을 국민의 뜻에 반(反)한 정당으로 깔아뭉개서 흩어버리는 선두에 서겠다는 살모(殺母)경쟁이 각축을 이룰 전망이다. ‘햇볕정책’에 쏟아진 강한 비판을 노구(老軀)로 받아낸 김대중씨는 분명히 말할 것 같다. 강한 공격이 최선의 수비였다고 말이다.
그런 그가 최선의 외교력은 최강의 국방력에 있는 것임을 함께 인식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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