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시역(市域)을 돌아 동해로 흐르는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는 매년 이맘때쯤 전후로 해서 머나먼 필생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언어떼 행렬이 아주 장관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의 장엄함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곳에 도달하는 동안 연어들은 목숨 건 여정을 거듭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던져놓은 그물을 피하고 천적의 습격을 헤쳐나온 연어만이 다시 모천(母川)인 남대천의 품에 안길 수가 있는 것이다. 냉정한 자연의 섭리는 절대로 모든 연어에게 공평한 번식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100마리 치어 가운데 겨우 한 두 마리가 살아남아 남대천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연어가 정확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은 태어날 때 선천적으로 하천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능력을 가졌다는 설과 후천적으로 어릴 때 익힌 하천의 냄새를 기억하여 회귀한다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오랜 여정 끝에 회귀에 성공해 산란의 임무를 끝낸 암수는 보통 3일 안에 기진맥진하여 상처투성이로 숨을 거둔다. 모험으로 가득 찬 연어의 여정은 이렇게 끝을 맺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도 현업에서 은퇴하면 귀향해서 말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고 싶은 분명한 귀소본능이 있다. 대가족제의 핵분열을 일으키고 예전과 달라진 시대 현실 탓에 지금은 죽어서나 고향 선산에 묻히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추석이나 설 명절 때 일어나는 민족 대이동의 긴 행렬은 인간 귀소본능의 절정체일 것이다. 이런 회귀본능은 뿌리 찾기와 당연히 연관지어지는 것이다.
가는 길이 서로 다르고 하는 일이 같지 않아서 다 흩어져 있어도 우리의 귀소본능은 늘 뿌리를 향해 잠재해 있다. 이를 부추기는 방법으로 지역갈등을 유발시킨 망국의 패거리 정치가 이 땅을 3색으로 갈라놓은 지가 수십 년이다. 언필칭 3김 시대의 종식과 함께 반드시 청산됐어야 할 지역주의 망령이었다. 그런데 치밀한 정치 함수에 의한 ‘무호남 무국가’의 시대착오적 호남 극찬으로 지역갈등을 고착화시키려는 의도가 새로 나타났다. 물론 우리가 다 아는 분의 영향력 제고를 위함일 테다.
북한 핵실험 후 만신창이가 돼버린 ‘햇볕정책’을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묘약으로 그는 사람집단의 귀소본능을 처방해낸 것이다. 다 죽어가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위기를 햇볕정책이 구해냈다는 지적은 아예 들은 척도 않는다. 호남결집만이 햇볕정책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뿐인 것 같다. 그러려면 자신의 영향력 아래서 여권의 통합신당이 이루어져야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 후 한나라당에 정권을 뺏기지 않을 대선후보의 물밑낙점을 모색할 것이 틀림없다.
‘햇볕정책’이 궁지에 몰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김대중 전대통령은 다음 대권후보로 지역화합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을 첫째 덕목으로 꼽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직 ‘햇볕’을 구하겠다는 일념만을 보일 뿐이다.
모르긴 해도 그런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다른 지역, 특히 영남사람들 할 말이 꽤 많지 싶다. 3수 끝에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호남몰표에 “그래 당신도 한번 해야 된다”는 영남의 이해가 작용했던 까닭임을 누구보다 본인이 부인치 못할 것이다. 이는 당시 대선후보들의 득표판이 생생하게 증빙하는 대목이다.
필생의 여정을 끝낸 연어가 산란의 마지막 임무를 끝내고 죽기 위해 목숨 걸고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 몰려드는 귀소본능의 장엄함이 왠지 돋보이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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