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우리당과 고건 전총리측이 제기하고 있는 범여권 통합론에 대해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나섰다. 한 대표는 지난 28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그것은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며 “반한나라당 연합은 대의가 아닌 대세를 쫓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저쪽이 힘이 셀 것 같으니 무너뜨리기 위해 모이자는 발상은 용납이 안 된다. 어떤 세력을 주저앉히고 망하게 하자는 것은 출발부터 좋지 않다”고 했다. 또 “범여권 세력 통합을 얘기하는데, 왜 민주당을 말하느냐, 민주당은 야당”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백번 옳은 말로 들린다. ‘반한나라당 연합’주장이나 ‘범여권 통합’주장이나 위기의식의 발로란 점에서 한 치 다를 게 없는 것들이다. 강한 적에 맞설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깃발아래 거함(巨艦)의 오월동주(吳越同舟)를 띄우려는 한 가지 책략일 뿐이다. 대통령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고, 국회의원 139명에 달하는 집권여당의 지지도가 10%대 미만으로까지 떨어지니 여권내부에서는 별별 소리가 다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지난달 17일 당원대상의 강연차 대구에 내려갔던 열린우리당 천정배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집권 4년간 오만했고, 국정운영에 무능했으며,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다”는 고해를 토해냈다. 그는 특히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지도 못했으며 국민들이 우리 자신에게 변화하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그에 부응치 못했고 오만했으며 그 결과 민생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자책을 숨기지 않았다.
천 의원은 이 정권의 법무장관하면서 동국대 강정구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 이례적 장관 수사지휘권을 발동, 검찰판단을 짓밟고 불구속지휘해서 임기절반이상 남은 검찰총장을 사퇴토록 했던 사람이다. 한 개인의 보안법위반 불구속처리를 위해 그 같은 초유의 검찰파동도 안중에 두지 않았던 그였다. 그때의 자신모습을 반성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많은 국민들에게 그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든 최고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천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오만과 무능을 인정하면서도 범여권 통합논의와 관련해서는 “열린우리당이 이룩한 개혁성과를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을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웠다. 말대로면 ‘운영에는 무능했지만 개혁의 성과는 컸다’는 뜻이 된다. 그럼 앞서의 ‘고해’와 ‘자책’은 영락없는 ‘작전상 후퇴’일지 싶다.
지난 4년간을 개혁놀음으로 지새고 모든 걸 전투논리로 밀어붙였던 이 정권이다. 전투의 판세가 형편없이 불리해졌으니 작전상 후퇴가 불가피해진 모양이다. 작전하는데 대의 따위가 필요했을 리 만무하다. 꼼수이든 계략이든 쳐부수면 그만일 판이다. ‘반한나라당 연합’또는 ‘범여권 통합’론이 대의일 수 없는 이치가 자명치 않은가?
국민지지를 받고 있는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생각 다른 사람들을 한 솥에 모으자는 쿠데타적 발상을 대의로 받아들일 사람이 이 땅에 없다. 이제껏 계략과 꼼수정치에 속고 속은 우리 국민들이다. 때문에 어느 때보다 국민은 이 땅 정치의 잃어버린 대의(大義)를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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