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익 편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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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정태익 전 주러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통일부는 통일 협의과정 성과물 관리하는 남북 교류청 역할 하는 데 그쳐야”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북한과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중·러·일로 대표되는 주변 4강의 역학관계도 잘 활용해야 된다고 보이는데, 대사께서 평소에 생각한 통일에 대한 비전이나 전략은 무엇인가.

 

▲대북 문제, 핵 문제, 통일 문제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통일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후 새로운 국정목표를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통일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에 종합적이고 철학적인 구상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광복 후 7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모범적으로 성공한 나라다.

한반도의 상황을 우리나라가 처한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화라는 새로운 국가목표를 내세워 종합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정치지도자가 통일화를 국정목표로 내세워 실현하기 위한 종합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종합적으로 통일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통일부는 통일협의과정에서 나오는 성과물 정도를 관리하는 남북 교류청 정도의 역할을 하는데 그쳐야 한다.

지금 남북 간에 소통이 안 되고 우리가 북한에 가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 민족의 해외 디아스포라, 러시아의 고려인이나 미국에 사는 HM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 대신 가서 교류하다가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만들어놨는데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통일정책을 청취하는 방식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활동해 통일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출신 사회학자인 하버드대학교 피티림 소르킨 교수에 의하면 첫째 비전이 제시되고, 둘째 그 비전에 공감하는 세력을 확보해야 하고, 셋째 그 세력을 통해 제도를 바꿔나가야만 사회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가 통일을 하려면 소로킨 교수의 이론처럼 통일의 비전 제시와 그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잘 양성해 제도적 변화를 일으키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이루기 위한 명확한 현실은 미·중·러·일로 대표되는 주변 4강이 한반도 통일에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또 우리 한국이 이 주변 4강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활용해서 통일을 이뤄나갈 것인지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다고 본다. 대사께서는 외교부에 있으면서 많은 고민과 구상을 했을 것 같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 간의 합의뿐만 아니라 특히 주변 4강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통일에 의해서 ‘중국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또 일본도 원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과 러시아는 호의적일 것이다’ 하는 식으로 예단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한반도 질서가 변화돼 통일이 된다면 주변 강국도 이에 따른 이익과 손해가 있을 거다. 예를 들면 중국은 영향력을 한반도 전체로 확대할 수 있는 이익이 있지만 또 동시에 해양세력과 직접적인 대결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추측은 한반도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익과 손해가 있는데, 한국이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가지고 대처해 나간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주변국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주변국과 전략적인 대화를 하려면 고위직 간의 상호 이해가 아주 필수적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권력구조와 체제를 바꿔야 된다고 본다. 예를 들면 국정의 최고 지도자가 외교 국방을 전담하고, 경제 문제 등 나머지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총리가 관장하는 헌법 개정을 상정할 수 있다. 통일이 국정의 최고 목표로 설정된다면 헌법 개정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외교·국방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통일 문제를 직접 관장하고 주변국을 정상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설득해 나가면 훨씬 효과가 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 4강의 이해득실은 국내 전문가들이 많이 논의를 해서 어느 정도 정리된 입장이 있다. 대통령은 주변 4강을 설득해야 하고 그런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다가올 통일에 대비해 새로운 정부 조직을 개편하고 이에 맞는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앞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데 아주 필요하다고 본다.

-대사께서는 정년 이후 다양한 직책을 맡았는데,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게 외교협회 회장직이다. 외교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주로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해 달라.

▲미국의 외교협회에는 회원으로 외교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있다. 국제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잡지 ‘포린 어페어스’를 발간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전략적 환경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와 같은 수준의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취임했다.

외교협회가 국익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자립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임 후 협회의 재정 안정도를 높이는 노력을 우선적으로 했다. 그리고 우리 외교협회도 ‘외교’라는 계간지를 발간하고 있다. 미국의 ‘포린 어페어스’만큼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좋은 잡지다. 이와 별도로 시의적인 이슈를 다루는 ‘외교광장’ 발간을 시작했다. 인터넷에도 ‘외교광장’ 칼럼을 배포하고 있다.

최근에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고, 그에 따라 공공외교법이 제정돼 현재 시행되고 있다. 본부와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공공외교를 실시하는 데 협회가 앞장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서 강연회도 열고 학술회도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방법으로 정부가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외교가 잘못 되면 나라가 망한다. 외교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외교 문제와 해결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확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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