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입지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판단할 때 권력주변에는 두 가지의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 하나가 나락을 향하는 권력자와 결별을 준비하는 동지적 권력 수혜자들간의 일탈(逸脫)이 빚어지는 것이다. 다른한쪽 변화는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는 판단으로 더욱 권력자를 벼랑끝까지 밀어붙이는 측근 장막부대의 ‘의리파’ 변신일 것이다.
본래 권력자가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 권력자에게 충성한다면서 열심히 무리하는 사람들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일이라고 했다. 또한 듣기좋은 소리만 해대는 아부꾼들 멀리하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술도 뒤끝이 좋아야 좋은 술” 이라며 “앞으로는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운 대목이 고건 전총리를 겨냥한 것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내 정동영 전, 김근태 현 대표를 필두로 한 신당창당 세력을 포함해서 퇴임한 현정부 고위직 출신들의 잇단 노대통령 비판대열을 망라해서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비판을 수용하는 것은 고사하고 일일이 대응하겠다니 국정이 마비될까봐 앞으로는 대통령 비판도 못할 판이다, 대나무숲으로나 가야할 모양이다” 라는 논평을 냈었다. 정부 고위직들이 퇴임후 인사권자인 대통령 비판러시에 그같이 동참하는 사태는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정책사안에 대한 이견이 주원인이겠지만 개인적인 서운함도 적잖은 이유로 꼽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교수는 “한미 FTA는 졸속으로 정부내에서 조차 소수를 중심으로 충분한 논의없이 추진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정태인 전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은 “노 대통령은 한미 FTA청문회에 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허준영 전경찰청장은 시위진압 과정에서의 농민사망사건으로 물러나게 된데 대해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사퇴요청을 했다”면서 “이런 일로 경찰청장이 물러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표현했었다.
권력자의 머릿속은 일련의 상황전개가 떠난자들의 ‘배신파’와 남는자의 ‘의리파’로 확연히 구별될 것임에 틀림없다. ‘의리파’하면 전두환정권때의 장세동, 김대중 전대통령 때의 박지원씨 같은 사람을 대표적으로 꼽을 것이다. 현정권에선 문재인 이광재 안희정씨 정도가 의리파로 남을 공산이지만, 이광재 의원의 경우는 차기국회의원 당락과 관련해서 미지수라는 평가다.

이렇게 되면 노 대통령이 자신에게 충성한다면서 무리하는 주변 인사들을 제어해서 다스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보완하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가질지 모른다. 현정부 첫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윤영관 서울대교수가 “참여정부 이후 불었던 탈미친중(脫美親中) 분위기는 세계정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서 나온 얘기”라고 현정부의 외교적 미숙을 지적하고 나섰었다. 조영길 전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를 앞장서 반대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 정권이 도저히 용서할 수없는 「떠난자=‘배신파’」의 비판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온갖 비난여론을 무릅쓰고 확실한 ‘코드인사’, ‘회전문인사’를 결행시키는 이유가 명백하다. 남은자들이 열심으로 무리해서 충성경쟁을 벌이는 「남은자=‘의리파’」를 염원한 것 말고 다른 연유가 있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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