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본인의 일관된 손사래에도 불구하고 정운찬 전서울대총장의 여권 대선후보론이 수그러들지않는다. 언론 일각에서는 오히려 그의 정치입문을 기정사실화 시킨 정도다.

정 전총장은 최근까지도 “여권에서는 불이 꺼져가니깐 나를 불쏘시개로 이용하려 하고, 언론은 한나라당의 독주에 맞설 상대후보로 나를 흥행카드로 이용하지만 나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통령상으로는 “대통령의 품격을 포함해 나라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사람, 이런 저런 이해관계에 덜 얽힌 사람, 특정지역에 연연하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석여하에 따라서는 그가 현실정치에 상당히 기울어진 것으로 비춰질 대목이다. 만약 정 전총장이 아직까지 교육자적 입장에서 국가 교육장래에 관한 얘기를 하며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것이라면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이건 누구도 그의 말을 왜곡하거나 의심하려고 안 할 것이다. 국민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는 일에 언론이 사려깊지 못하게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는 앞선보도를 할 수 없는 이치도 자명한 것이다.

따라서 정운찬 전총장 그는 본인이 싫든 좋든, 또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이미 정치의 장(場)에 깊숙하게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사회가 상대관계에서 듣기좋은 공치사라도 들을 때는 “당신 지금 정치적 발언 하나”하는 ‘조크’를 해 유행시킨지 오래다. 겉다르고 속다른 정치 현실, 낮밤을 달리하는 정치행각, 자고뜨면 말바꾸는 거짓말정치, 돈되는 곳이면 벌레꼬이듯하는 이권개입에 지하주차장의 사과상자(?)거래, 사생활에 얽힌 온갖 추문들이 이땅 정치집단의 전유물이 돼왔음을 삼척동자도 모르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 주변에 말많고 미덥지 못한 사람, 앞 뒤가 잘 안맞는 사람을 빗대서 점잖은 표현으로 ‘정치적인 사람’이라고까지 일컫는다. 또한 어제까지 만인에게 존경받고 신뢰받은 사람이 일단 정치적 입지에 놓이게 되면 상황이 아주 돌변해져 갖가지 의혹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우리의 정치문화다. 근래 정운찬 전총장의 행보가 부쩍 국민적 이목을 끄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김근태-정동영-정운찬-’으로 이어지는 삼각연대설이 정가를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도 사
실이지만, 정 전총장이 최근들어 쏟아내는 정치적 발언들이 더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삼각연대설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마찰음을 냈던 열린우리당외 정동영 전, 김근태 현의장이 대선후보를 동시포기해서 정운찬 전총장을 중심으로한 ‘킹메이커’로의 방향전환을 했다는 골자다.

그런데도 정 전총장은 여권이 자신을 ‘불쏘시개’로 이용한다며 거듭 손사래를 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통령상을 조목조목 밝힌 것으로봐 정치에 전혀 뜻이 없어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여권의 구원투수로 나설 생각은 없는 것으로 이해될만하다. 그는 지금의 여도 야도 아닌 새 정치세력의 중심에 서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정 전총장은 태도를 명쾌히 해야 할 시점이다. 까딱 여권이 그를 ‘불쏘시개’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오히려 서울대총장시절의 국민지지와 성원을 정치판에 이용하려 든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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