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탈 끼고 고금리 대출’ 택배 냉동 탑차 사기에 우는 기사들
‘캐피탈 끼고 고금리 대출’ 택배 냉동 탑차 사기에 우는 기사들
  • 황기현 기자
  • 입력 2019-06-21 16:49
  • 승인 2019.06.21 21:09
  • 호수 1312
  • 2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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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미끼로 피해자 모집해 냉동 탑차 강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뉴시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뉴시스]

 

지난 3월 대형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던 A씨는 월평균 수입 400만 원 이상을 보장한다는 구인 공고를 발견했다. 택배기사를 모집한다는 해당 공고는 일반적인 구인 광고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수익에 혹해 지원한 A씨는 회사 측의 연락을 받고 면접까지 보게 됐다. A씨에게 회사는 “택배차량 출고를 대신 진행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 측의 말을 듣고 위임장과 계약서를 작성, 이틀 만에 냉동 탑차 계약을 맺었다. 당시에는 이 계약이 자신의 발목을 잡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과다 대출 유도
“계약서에 직접 서명한 탓에 구제받기 어려워”

차량을 출고한 뒤 연락을 기다리던 A씨는 회사 측에서 연락이 없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못한 그가 재촉하자 회사 측은 처음 이야기와는 다르게 모 택배회사에서 이틀  간의 실습을 요구했다. 실습을 받으러 간 A씨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450만 원은커녕 300만 원도 벌기 어려울 정도로 수익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A씨가 작성한 위임장에는 차량 구매를 위한 모든 행위와 함께 금융거래 권리까지 자동차대리점에 넘긴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발생하는 민·형사상 문제 등도 A씨가 책임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꼼짝없이 당한 A씨는 캐피탈 대출로 차량금액 1650만 원과 특정대출 1200만 원 등 총 285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빚졌다. 이자율은 무려 9%에 달했다. A씨의 신용등급이 낮은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캐피탈을 이용할 이유가 없는데도 회사 측은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했다. 알고 보니 회사 측은 특장 업체 등으로부터 수수료 등 명목으로 돈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적인 냉동 특장 견적이 700만 원 안팎이면 충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다한 가격을 책정해 부당 이득을 취한 것이다. 더구나 정상적인 택배 회사는 지입 차량을 보유하고 있어 개인 차량은 굳이 구매할 이유가 없었다.

비슷한 사례 줄이어

30대 여성 B씨 역시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 그는 지난 1월 냉동 탑차를 구매하며 2700만 원을 대출받았다. 면접을 시작으로 대출, 차량 출고, 차량등록증 발급 등이 지나치게 빨리 진행되는 것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대출금 2700만 원 중 1050만 원이 특장 업체로 넘어간 뒤였다. 특장 업체는 다시 445만 원을 회사 측에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대출 취소를 요구했으나, 캐피탈 측에서는 당사자가 취소를 요청해도 회사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취소가 어렵다고 답변할 뿐이었다. 회사 측은 대출 취소를 거절했고, B씨는 결국 증거 자료를 수집해 경찰 등에 민원을 넣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취업난이 이어지며 A씨나 B씨처럼 고수익에 혹해 피해를 입는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구 경북 지역 기준 유사한 사기로 구조 상담을 신청한 피해자는 2016년 2명에서 2017년 3명, 2018년 6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된 수익을 얻지 못하면서도 매달 70~80만원에 달하는 고액의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대형 택배사의 경우 본사에서 기사를 채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택배 불경기라 수요도 적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어 “계약서에 사인하면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으니 꼼꼼하게 읽어보고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접 전화해보니…“만나서 계약하자”

6월 19일 구인구직 사이트에 ‘택배기사’를 검색하자 무려 5천 건이 넘는 구인 공고가 쏟아졌다. 공고에는 대부분 월급이 45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로 명시돼 있었다. 600만 원에 달하는 월급을 주겠다는 회사도 있었다. 공고의 대부분은 수익과 관련돼 있었다. 택배 기사의 연 소득이 7천만 원에 달한다는 내용과, 6시 ‘칼퇴근’ 할 수 있다는 내용,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은 구직자들의 마음을 홀리기 충분했다. 최근 불거진 탑차 강매를 의식한 듯 신차를 무조건 강매하는 업체를 주의하라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얼핏 구직자를 위하는 안전한 업체인 듯 보였지만 공고 마지막에는 ‘해당 공고는 모집형태에 따라 차량구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해당 회사를 검색해 전화를 걸어 상담원과 대화를 시도했다. 택배 기사 업무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상담원은 회사를 방문하지 않아도 직원과의 미팅이 가능하다고 했다. 기자가 “혹시 차량을 구매해야 하느냐”고 묻자 “택배 업무 하시려면 구매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현재 모아둔 돈이 별로 없다”고 하자 “연계된 금융사에서 대출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회사를 방문하지 않아도 외부에서 대출과 계약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탑차 사기에 대해 묻자 상담원은 “저희는 그런(사기 치는) 곳과는 다르다”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택배 업무는 내장 탑차로 충분”

문제는 이 같은 조건에 속아 냉동 탑차를 계약했더라도 법적으로 구제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본인의 서명이 들어간 계약서는 법적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계약 내용이 실제와 다르다면 계약 해지는 물론 손해 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지만 탑차 사기는 계약서 자체가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사기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계약 전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기사를 하면서 냉동 탑차는 필요가 없다고 보면 된다”며 “정상적인 택배 업무는 내장 탑차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당부했다. 속아서 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차량 수령 전에 걸려오는 해피콜(할부확정전화)을 받지 않거나, 해피콜 통화 중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혀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 이미 피해를 당한 경우라면 홀로 신고하기 보다는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과 연대해 구제 요청을 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피해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냉동 탑차를 강매하는 택배 사기. 법적인 문제는 없을지라도 도의적인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황기현 기자 kihy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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