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야당(한나라당)을 주적(主敵)으로 삼은 노무현 대통령의 ‘결사항전’ 의지가 날마다 비장해 보인다. 특히 언론을 향한 적개심은 언론사주(社主)에서 일선기자에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고,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외교부장관에게 세계각국 정부부처의 기자실 담합을 조사토록 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으로까지 전개돼 있다.
이제 세계 각국의 대한민국대사관은 주재국 각 부처 기자실을 염탐하고 다녀야할 판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또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쯤이면 임기 1년 앞둔 청와대내부 분위기가 핏발선 눈에 살벌함마저 감돌 것 같다. 들리는 바로는 “보좌하는 이들이 제대로 못해서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반성조에서 “기껏 키워놓았더니 배신 때린다”는 김근태 정동영에 대한 분노에 “보수언론 등 기득권과 끝까지 싸워야한다”는 결의와 “끝내 우리는 이길 것”이라는 비장함과 결연함의 그 자체라고들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끼리 만나면 서로 이같은 분위기를 확인하고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개별적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으냐” “우리가 그렇게 잘못했느냐”며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분위기는 청와대가 민심으로부터 고립된 느낌에다, 노 대통령의 근래 처신이 꼭 옳은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의에 찬 겉모습은 ‘대장이 앞장서서 가는데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반영일 수 있다, 내면 중심에는 ‘이미 끝났다’는 패배감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권력심장부의 뒤숭숭한 분위기와 관련해 상당수 정권관계자들이 더 이상 무너지기 전에 심장부(청와대)를 떠나서 입지를 옮기고 싶어하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는 YS정권말기에 노동법 날치기 통과 후 무너져내리는 청와대분위기를 의식한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이 “우리에겐 레임덕이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상은 대다수가 도망갈 궁리를 했던 것과 유사한 정황일 것이다. 반면에는 또 연초 공직사회 인사철을 맞아 조금이라도 정권실세에 줄대기 위한 경쟁이 더 한층 치열하다고 한다. 이 대목에 있어서는 이번 인사의 성격이 현정부 마지막 정기인사라는 점에서 큰 몫을 하고 있지 싶다.
더욱 권력입김이 강하다는 경찰 군인조직 인사를 놓고는 별별 해괴한 소문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인사에서 줄대기 경쟁이 난무하면 물론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 또한 정권말기의 ‘소리’내기에 톡톡히 한몫 할 공산이다. 권력이 스스로 적을 늘리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누가 봐도 대립구도를 줄여나가야 할 시점이다. 그런 때에 거꾸로 초 대치정국을 불사하려는 그 자명한 이유가 뭔지 몹시 궁금하다. 또 국민을 더 불안하게 만들면서까지 싫다는 개헌정국을 반드시 이끌어내야 하는 이 정권의 속사정을 이해하기 여간 어렵지가 않다. 그로해서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을 가속화시킬 것 같지 않고 여권 옛 지지층이 재건될 조짐도 희박해 보인다.
다만 권력말기의 속성이 누대에 이르도록 꺼져가는 불꽃의 속성을 닮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불꽃은 마지막 꺼져가는 순간에 더 파랗게 타올라 처연한 모습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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