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을 읽다보면 흔하게 나오는 문구 중에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란 격언이 있다.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뜻이다. 강호를 종횡하는 무림고수들이 빼어난 실력을 가진 소년고수를 만났을 때, 앳된 소년의 무위에 감탄하고 세월무상을 탓하며 내뱉는 말이다.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일종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데, 무협세계관을 아름답게, 빈틈없이 만들어 주는 장치 중에 하나다. 

치고 올라오는 소년고수를 만나면 강호를 주름잡던 무림고수들은 쿨하게 자신들의 시대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고 순순히 뒷방으로 물러나진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손을 섞어 우열을 가리고 자신의 시대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초반에는 소년고수에게 패배의 아픔을 선사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절치부심한 소년고수가 노고수를 차례차례 꺾고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무협소설은 그래서 허무맹랑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현실세계에서는 무협소설처럼 쿨한 태도를 가진 선배세대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사회의 현실은 절대 선배 세대가 후배들에게 자신의 시대를 흔쾌히 물려주지 않는다. 386세대가 그렇다. 80년대부터 무림을 종횡하던 신진고수들이었던 386들은 이제 586이 되어버렸다. 장강의 앞물결을 밀어내고 시대를 쟁취한 그들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순순히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

386세대는 용감했다. 그들은 난세의 지도부였고 목숨을 걸고 최전선을 내달렸다. 시대가 영웅을 낳고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말보다 더 적절하게 386세대의 운명을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80년대는 난세였고, 386들은 80년대를 평정하고 민주화의 영웅이 되었다. 그들이 통과해 온 시대를 폄하할 수는 없지만 386들은 축복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386세대는 시대의 영웅이었고 80년대 이후로 시대의 중심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386세대는 일찌감치 정치권력의 중심에 설 기회도 얻었다. 주로 민주개혁진영에 자리를 잡은 386세대 지도부는 정치권에 쉽게 자기 위치를 마련했다. 노무현 시대가 열리면서 30대의 이른 나이에 권력의 중심으로 직진할 수 있었다.

참여정부는 386정부였고 노무현의 실패는 사실 386세대의 실패여야 했다. 노무현은 자신의 업을 짊어지고 스스로 시대를 마무리한 뒤에 마침내 부활했지만 386세대는 부활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죽은 적이 없으니까.

386세대가 노무현 이후에도 딱히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고 권력에서 멀어지지도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386세대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삼재검법으로 천하제일검이 되겠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탈속한 성인이 아닌 이상에야 누가 있어 자신의 밥그릇, 자신의 인생에서 흔쾌히 물러나겠는가. 현대사회에서 은퇴와 정년제도가 정착된 것은 스스로 물러나는 세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세대는 계속 앞물결이고 싶고 밀물이고 싶다. 스스로 썰물이 되는 밀물은 없다. 바닷가를 꽉 채운 모든 밀물은 다음에 밀려오는 밀물에 밀리고 밀려서야 비로소 썰물이 된다. 지금 386세대가 욕심 많은 기득권 세대로 보인다면 밀물이 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일이다.

밀물을 썰물로 밀어내는 것은 뒷 세대의 권리이면서 의무이기도 하다. 70년대, 80년대 생들은 그들이 세상을 알고 나서부터 지금껏 386세대를 떠받들거나 386세대에 치이는 운명을 살았다. 이들이 분발해야 한다. 386세대를 뛰어넘는 권력욕과 불굴의 의지만이 386 세대를 과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무진 보좌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