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리자 '쇼하느냐', '업무 외 만남 강요' 직장 갑질입니다

[고용노동부 제공]
[고용노동부 제공]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다음 달 16일부터 시행되면서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즉시 사건을 조사해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지를 변경해 주는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 취업 규칙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법 조항이 애매하고 구성원 간 소통이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요서울은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 접수 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 등을 통해 이번 법안의 전망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1 A씨는 여성이 많은 직장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회사 분위기는 조금 이상했다. 신입으로 들어왔으니 분위기를 띄우라며 A씨에게 노래와 춤을 강요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한 의도는 알겠으나 A씨는 여자 상사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꼈다.
 
#2 여성노동자 B씨는 모든 직원이 보는 앞에서 상사에게 “개돼지 같은X, 어디서 너같은 XX이 여기 들어왔니, 경리하는 X이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고 XX이야, XXX, 저 버러지만도 못한 X" 등의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2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야 했다. A씨는 들을 때마다 온몸이 굳어지고 떨렸다. 너무 힘들어 눈물을 흘리는 B씨에게 상사는 “지금 쇼하느냐, 너는 뇌가 썩었다. 요망하다”라는 수치스러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3 아르바이트생인 C씨는 상사가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할 것을 강요 받았다. 업무 외 만남을 강요받기도 했다. C씨는 본사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본사에선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이후 취직한 또 다른 회사에서는 거래처와의 회의 분위기를 좋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상사가 여성인 E씨에게 참여를 강요하는 것을 목격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이 법은 간호사 ‘태움 문화’와 중소 및 중견 기업 대표들의 직원 폭행 사건 등이 사회적 이슈가 돼 지난 1월 근로기준법에 신설된 조항이다.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의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유예 기간을 거쳐 다음 달 16일 공식 시행된다.
 
개정안 통과시 3000만 원 벌금 부과
 
정부는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의제로 상정했고 국회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신고 접수 시 사용자는 즉각 조사에 착수해야 하며 괴롭힘이 사실로 드러나면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근무지 변경 및 유급휴가 등을 보장해야 한다. 신고 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기업은 법 시행 전까지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대한 내용을 교육 및 반영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피해 신고가 접수될 시 반드시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가해자에게 징계 및 근무지 변경 등 조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벌인 행위자에 관한 처벌조항이 없고 가해자가 대표일 경우 대표에게 신고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에서 제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요소 중 행위요건에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 및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법 조항이다. 이 법 조항의 경우 내용이 포괄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아 시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이 법이 일부 기업에만 해당하고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는 법 시행 전과 후가 같을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지적했다.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중소기업들을 정부가 방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법안 취지는 좋지만 모호한 기준에 논란 일 듯
 
이에 고용부는 지난 2월 이를 구체화한 괴롭힘 예시 매뉴얼을 냈다. 고용부가 공개한 직장 내 괴롭힘 유형 매뉴얼은 개인사 소문내기, 음주와 흡연 및 회식을 강요하기, 다른 사람 앞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 하기, 정당한 이유 없이 연차 못쓰게 하기, 지나친 감시 등이다. 또 남자 직원에게만 신체적으로 힘든 일을 시키거나, 여직원에게만 커피를 부탁하는 행위도 성차별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

사무직으로 들어온 직원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영업직으로 발령 내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예시됐다. 애매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기준에 대해 걱정하던 노동자들은 구체적으로 제시된 조항이 나와 환영하는 분위기다. 고용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제시한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은 고용노동부 사이트에 올렸다”며 “(하지만) 개인마다 괴롭힘의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호한 괴롭힘에 대한 매뉴얼은 다음에 배포할 예정”이며 “많은 기업들이 교육에 동참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선우정택 정책기획관은 “고용노동부는 익명신고만으로도 행정지도 및 사업장 근로감독을 하고 있다. 피신고 사업장에 대해서 고용 평등 근로감독 대상 사업장으로 선정해 2차 피해 확인 등을 계속 관리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사건처리 종료 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점검(모니터링)을 의무화함으로써 사후 관리를 강화하고 신고자의 접근성을 강화하여 익명신고시스템을 개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업들도 사전 예방 활동에 나섰다. 최근 롯데백화점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센터는 전화, 메신저, 이메일로 신고 접수가 가능하며 전문 심리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포스코도 지난해부터 그룹 차원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지침, 대응 안내서도 준비했다. 현재도 직장 내 괴롭힘·따돌림을 전담하는 부서를 통해 정기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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