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공실상가 이대로 방치해야 하나

공실상가의 문제에 직면한 한 상가는 ‘깔세’ 운영에 나서기도 했다.

[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곳곳에 붙은 ‘무권리 임대’ 딱지. 창업을 꿈꾸는 이들은 증가하는 추세지만 ‘지금 장사하면 망한다’는 업계 경고에 선뜻 모아놓은 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동네 골목마다 텅 빈 가게를 보는 일은 익숙하다. 심지어 ‘좀 크다’하는 상가들마저 공실이기 일쑤다.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고 앉아 있는 김정례(52세, 의류소매업) 씨가 인건비는 물론 임대료 낼 돈조차 없다며 한탄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일요서울이 상가골목을 찾아봤다.

 명동, 신사, 압구정 등도 공실 문제로 고초 겪어
 시티아웃렛·아이템 단일화…상권 따른 전략적 변화

한국감정원이 공개한 상업용부동산임대동향조사의 상권별 상가 공실률(2019년 1분기 기준)에 따르면 총 일반상가 6959동 중 전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1.3%, 전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5.3%다.

한국감정원의 지난해 1분기 조사결과와 비교할 때 중대형 상가 공실률(10.4%)과 소규모 상가 공실률(4.7%)이 각각 0.9%p 증가·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감소했지만, 사실상 지난해 1분기만 제외하고는 꾸준히 5%대를 유지한 점을 보면 그리 달갑지 않은 수치다.

최근 세종시 인근 상가 지역은 시청이나 교육청이 들어섰음에도 공실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경기도 시흥시를 비롯한 다른 신도시의 상가 지역 역시 투자가치와 상권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에도 여전히 텅 빈 상가로 몸살 중이다. 총면적 21만2445m(약 6만4200평) 크기로 서울 코엑스몰의 2배쯤 되는 초대형 상가로 잘 알려진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의 쥬네브도 약 절반가량이 공실로 투자자들의 악몽으로 남았다.

서울 지역도 고민은 마찬가지. 대표적인 관광지로도 잘 알려진 명동이나 신사동, 압구정동도 공실 문제로 고초를 겪고 있어, 여행책자에서 본 화려한 모습과 달리 한산한 분위기에 실망하는 관광객도 한 둘이 아니다.

이외에도 동대문 소재 주요 패션상가인 A상가는 한 때 화제를 모으다가 몇 년 전 공실문제 문제에 직면했고, 얼마 전 비어있는 상가 지하층에 ‘깔세’ 형태의 임대 영업을 시작했다. 대개 ‘깔세’는 공실로 인한 임대 수익이 감소한 임대인이 임차인을 통해 보증금 없이 일정 기간의 월세를 한꺼번에 받아, 적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1년 단위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흔히 ‘속옷 땡처리 매장’이나 ‘수입의류 상설할인 판매장’ 등으로 활용된다. 

경기불황, 소비패턴 변화

상가 공실률이 높아진 점을 두고 전문가들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여파나 심각한 내수경기 침체 등 경제적 불황을 손꼽는다. 또한, 온라인 중심의 소비문화 행태 변화 등도 원인으로 제시했다.

국내 관광객 중 중국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만큼 사드 사태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드 사태 당시 중국 당국이 단체관광 규제를 시작했고, ‘보따리 장사’에도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남대문이나 동대문 등에서 도매로 구입하는 중국인들이 급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사드갈등이 일어난 2017년 기준 한국 방문 중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대비 389만8369명 감소했으며, 지난 2018년에는 1인당 지출 경비가 1909.3달러로 전년 대비 238.6달러 감소했다.

국내 소비시장이 주춤한 데 있어 온라인 중심의 소비문화의 변화도 설득력 있는 원인이다. 온라인 쇼핑몰을 비롯해 인스타그램 등 SNS 판매경로가 확대되면서 지난 2월 기준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9조5966억 원으로 지난해 동월대비 16.4% 증가했고, 모바일쇼핑 거래액은 6조1817억 원으로 26.0% 증가했다(통계청).

그 가운데 온라인쇼핑 거래액 중 모바일쇼핑 거래액 비중이 64.4% 차지하는 걸 보면 ‘발품 파는 시대’가 ‘터치의 시대’로 변화했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남대문에서 액세서리 도·소매점을 운영하는 김은지(31세, 부천시) 씨는 “임대료를 내고 점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SNS 등 온라인을 통한 판매량이 많아 이 또한 손 놓을 수 없어 두 가지 일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실문제 극복한 상가들

공실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쇼핑상가들의 이색적인 변화도 눈길을 끈다. 시설이 낙후되거나, 인지도가 낮은 쇼핑몰의 경우 시설 개보수 작업을 시행했고 홍보·마케팅을 활성화 했다. 한 전문가는 “건물주와 임대인이 상생하기위해서는 상가 특성에 따라 해당 지역의 소비문화와 트렌드를 반영한 전략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공실문제 해결의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SH공사가 문정동 일대에 조성한 동남권유통단지(가든파이브)다. 17만8443㎡(약 5만4073평)로 국내 최대 규모 유통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예상가를 웃도는 분양가에 계약 포기자가 속출하면서 수년간 방치됐다.

그 후 대형 아웃렛인 현대시티몰이 입점하면서 1300여 개 점포 운영에 나섰고, 공실문제는 해소됐다. 이외에도 ‘거평프레야’로 시작해 ‘케레스타’로 운영되던 현대시티몰 동대문점은 시설낙후, 경쟁약화로 운영난을 겪던 과거와 달리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가는 추세다. 현대시티몰 동대문점은 국내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를 입점하거나 다양한 놀이 문화 시설들을 갖춰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인근 주요 패션상가와는 다른 차별화 전략에 나서고 있다.

재개발 지역인 신도시의 경우 다양한 거리형 상가를 주제별로 입점시켜 손님유입력을 높이는 방식인 ‘스트리트형 상가’가 활성화하는 추세다. 호반건설이 시행한 판교와 광교의 ‘아브뉴프랑’이나 합정동에 위치한 ‘메세나폴리스’는 개점 이후 관광객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단순히 쇼핑몰에 그치지 않고, 사진을 찍고 즐기기 좋은 ‘나들이 코스’의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낙후된 지하상가의 ‘선택과 집중’이 돋보이는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는 2012년 ‘고투몰’로 재개장하면서 한층 많은 방문객을 수용하고 있다. 낙후돼 있던 기존 시설을 재정비했고,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상가 내 판매 아이템을 ‘패션·의류’로 단일화해 ‘뜨내기손님’보다 ‘단골손님’ 잡기에 집중하고 나섰다.

이외에도 상점이 활성화되지 않아 공실 많던 서울 교대역 지하상가는 서울교통공사의 주도로 ‘맞춤형 사무실 임대’공간으로 탈바꿈 중이다. 교대역 특성(법원·검찰청 위치)을 살려 관련 오피스타운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각 상권에 맞는 특성을 찾아 상가마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공실상가의 변화로, 건물주와 상인들 모두 경제적 순항을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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