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에는 연휴가 짧고 날씨마저 쾌청치 못해서 명절기분이 덜 했던 것 같다. 질퍽한 길 오가느라 분주함은 배였지 싶다. 그래도 작년 추석지내고 모처럼 모인 가족끼리는 적잖은 추억거리를 또 만들어냈을 것이다.

한편 대통령 선거 해를 맞은 사랑방정치 토론이 짧은 연휴와 상관없이 열기를 더해 뜨겁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올해는 정치권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어느 해보다 설 민심을 중시하는 때였다. 각 정파가 대선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그러려면 여권은 열린우리당의 탈당파와 잔류파 사이에서 빚어지고 있는 ‘말 안 되는 싸움’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에 대한 옳은 판단부터 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李, 朴 양진영의 ‘말 안 되는 싸움’에 대해 국민에게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부터가 대선전략의 시작일 것이다.

혹여 노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을까봐 전전긍긍하면서 국민 앞에 ‘끗발’세우던 여권 핵심층 사이에 정권 힘빠질 때쯤 되니까 하루아침에 나타내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다. 탈당파들은 돌아선 마당에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는 태도가 확연하다. “노대통령은 대통령감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거침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친노파의 한 잔류의원은 “그 사람 행자부 장관자리 달라고 대통령참모들에게 무릎 꿇고 술을 따른 사람” 이라고 까발리는 등 갈라지는 여권의 이전투구가 눈뜨고 못 볼 판이다.

“큰 바다에서 다시 만나자”는 여운을 남긴 채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탈당초기의 ‘합의이혼’분위기는 불과 얼마 사이에 전혀 간곳없이 돼버렸다. 이런 것이 설마 ‘위장이혼’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벌이는 고육지책일리는 만무할 것이다. 원래 망해가는 집구석에 싸움이 잦다고 했다. 아무것도 잘해놓은 것 없이 지들끼리 안방 탓, 사랑방 탓, 하며 쪽박 깨는 싸움에 누가 시비 가릴 일도 아니다. 다만 혀 차고 돌아서는 따름일 것이다.

이렇게 돌아선 반사적 이익이 고스란히 한나라당 몫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아니라고도 못할 판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잘하면 손 안대고 코 풀 수 있는 아주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 셈이다. 거의 과반에 육박해지는 한나라당 지지율이 언감생심 당이 노력한 대가라고 평가할 한나라당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럼 현실의 한나라당 모습이 어째야 좋을지를 스스로 모를 까닭도 없을 것이다. 말하나마나 오만하지 말고 낮춘 자세로 국민마음을 다시 잃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는 삼척동자도 판단할만한 일이다. 그런 것을 뭣에 취했는지 한나라당 사람들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나라당은 2008년 집권을 받아놓은 밥상으로 여기는 눈치다. 그래서 표정관리만 잘하고 있으면 될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심심하면 ‘대세’ 얘기도 곧 잘한다. 그러니 「경선승리=대권승리」라는 인식이 그들 사이에선 턱없이 자연스러울 수 있을 노릇이다.

또한 이점이 李, 朴 사단간의 ‘말 안 되는 싸움’이 죽고살기로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굴러온 밥상을 놓치게 되면 기회가 새로 없을 것이라는 조바심이 이전투구에 큰 몫을 할 수밖에 없다. 후보검증문제와 관련지어 맹렬히 문제제기를 하는 쪽은 “2002년의 눈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건강한 후보를 찾아야하며 암 검사를 늦게 해서 암이 커지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말 안 되는 싸움판’으로는 분명「건강한 후보」이전에 진절머리 나서 돌아서는 국민 뒷모습만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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