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 동안은 끝내 한나라당 탈당을 결행시킨 손학규 전경기지사에 대한 ‘갑론을박’이 단연 화두였다. 노 대통령까지 나서 논란의 한 축을 맡았었다.

손 전지사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준비 과정에서 마뜩찮은 처신으로 의혹이 일 때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봐라”는 말을 했었다. 말마따나 그는 김영삼 전대통령에 힘입어 민자당의원으로 14대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사람이다. 이어 신한국당, 한나라당 간판으로 16대국회까지 내리 3선 의원을 지냈다. 뿐 아니라 대통령이 된 당 총재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복지부장관을 지냈고 당 공천으로 경기도지사도 했다.

이런 그의 ‘걸어온 길’은 “내가 한나라당의 수문장”이라는 표현을 아주 실감나게 만들었다. 많은 국민들은 그같이 14년간이나 화려한 무대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폼 나는 정치를 만끽해 무대의 수문장이 될 것이라던 사람이 느닷없이 무대한가운데 침 뱉고 마구 진흙 뿌려대는 일 따위는 언감생심 못 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 것이 갑자기 대문 쳐부수고 뛰쳐나와 “21세기 주몽”운운하며 눈물 머금는 그 수문장 표정에 실소한 사람들이
또한 적지 않았을 것 같다. 한나라당에선 ‘부여국’의 ‘대소왕자’처럼 그를 핍박한 사람이 없었다.

더욱 실망스럽고 분노를 느끼게 하는 부분은 ‘한나라당 수문장’을 자처하며 그동안 많은 국민들로부터 신념과 신뢰를 이끌어냈던 그의 이중성이
다. 지난해 6월 그가 처음 ‘100일민심대장정’에 올랐을 때 여론은 그다지 그를 주목해주지 않았었다. 그런 중에 차츰 그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그때의 ‘신념’을 믿어서였다.

그는 자신을 키워놓은 한나라당을 향해 ‘군정(軍政)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의 잔재들’이 주인행세를 한다고 몰아세웠다. 남은 사람들을 형편없는 ‘수구꼴통’으로 내몬 것이다. 더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제까지 그가 내놓은 턱없어 보였던 주장들이 모두 빗장 풀어 야반도주하려는 수문장의 명분 쌓기였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선선거인단100만명’고집은 전혀 타협가능성, 현실성 없는 것임을 그가 계산 못했을 리 없다.

21세기 뉴-리더를 기대했던 사람에게서 어지럽기 짝이 없는 묵은 정치행태를 새삼 관람해야하는 국민 마음이 보통 착잡하지가 않을 것이다. 특
히 한나라당 영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 손학규 탈당이 이명박-박근혜 싸움으로 비화돼 커지는 양상이다. 박근혜 사단은 “한나라당에 소장파는 개혁성향이 아니라 권력지향적 소장파만 존재한다”며 “손 전지사를 떠나보낸 것은 권력지향의 소장파 의원들”이라고 이명박 지지로 돌아선 소장파의원들을 맹비난했다.

박 전대표측 비난이 뜨거운 것은 지난해 손 전지사의 민생대장정 때 현장을 찾은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손 전지사와 함께 한나라당의 개혁을 이룩하고, 대선주자의 완벽한 3강 구도를 구축하고,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서 손 전지사와 함께할 것을 결의했다”며 “올 초까지도 소장파의 남경필 대표의원은 그 모임이 변함없이 손 전지사 지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다. 결국 박 전대표가 주장했던 ‘당내 줄 세우기’가 당의 수문장을 달아나도록 만들었다는 논리다. 앞으로 수문장이 달아나버린 한나라당의 뒤끝 전개가 상상되고도 남을 대목이다.

한나라당에는 앞으로도 누구 하나 불쏘시개로 남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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