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05년 1월23일자 보도에서 “미국정가는 귀족 가발만 쓰지 않을 뿐 루이14세(프랑스 태양왕) 궁정과 닮았다”는 표현으로 미국 정계 모습을 묘사했었다. 이 신문은 적어도 미국의 상원의원 18명, 하원의원 수십 명이 부모덕에 그 자리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덧붙여서 관료사회에도 가문 후광으로 요직에 오른 이가 적지 않다는 보도를 했었다.

이런 미국 세습정치는 벌써 ‘존 애담스’ 2대 대통령이 아들 ‘퀸시 애담스(6대 대통령)’를 프러시아 대사에 임명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아버지후광 덕을 봐서 정치적 성장이 빨랐던 예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전남무안, 신안의 사태처럼 시끄럽고 노골적일 수는 없었다. 정치세습을 위해 공당이 전략공천한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우리국민들이다. 때문에 DJ(김대중 전대통령)를 향한 많은 국민들 마음속 갈등이 더 심할 것 같다. 현지 주민들 표정조차 김대중씨 일가를 나무라는 기류가 강하다고 한다. 대통령에, 노벨상 수상에, 큰아들이 몇 번씩이나 국회의원을 지냈으면 ‘DJ 家’에 더 있을 한(恨)이 없다는 얘기들이다.

그럼에도 김 전대통령이 자신이 받았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지역민들 사랑을 이용해 “지역과 국가를 위해 좋은 봉사를 하기를 바라는 심정”이라며 둘째 아들까지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그 아들이 10만원짜리 헌 수표 1만장이 든 사과상자를 집 장롱 뒤에 숨겨놓는 것을 비롯해 비리혐의로 실형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사면복권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다. 또 목포지역구와 민주당비례대표로 3선까지 한 큰아들 홍일씨는 형 확정판결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지 1년도 안됐다. 이걸 무슨 금의환향할 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들들 비리 당시 대통령하던 아버지가 국가 위한 봉사 운운하니 기막히지 않은가.

또한 김대중 전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삭발투쟁 같은 살벌한 당내분란까지 무릅쓰고 ‘전략’ 이름 붙여 공천하는 민주당을 공당으로 봐줄 국민이 있을지 의문이다. 여럿의 공천신청자를 두고 공천희망도 안한 사람에게 매달려 공천장을 안기는 작태 하나에서 민주당 한계가 드러나고만 것이다. 더욱이 김홍업씨가 무안, 신안땅을 밟은 것이 그의 출생 후 지난 3월초에 3박4일간 출마준비를 위해 갔던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차마 말을 잊을 노릇이다.

아버지의 노탐(老貪)이 지나치다는 말이 당연하게 생길 법하고, 아들 된 자의 분수모른 욕심은 크게 질책 받아 마땅할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에겐 누가 뭐래도 환란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최초로 성사시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칭송받을 업적이 있다.

그런 것이 이번 홍업씨의 민주당 전략공천으로 한꺼번에 ‘세습정치’의 비판 속에 묻혀버릴 위기에 가로놓였다. 김영삼 전대통령 아들 현철씨가 문민정부 때부터 국회진출을 노렸지만, ‘세습정치’비판 때문에 번번이 좌절했던 교훈도 아랑곳 않는 ‘DJ家’의 오만을 탐탁해할 국민이 없다.

문제해결은 철저히 홍업씨 몫이다. 홍업씨가 결단하지 않으면 아버지 명성에 씻을 수 없는 누를 만들뿐이다. 지금 홍업씨가 서있는 그곳은 자신
이 있을 자리가 결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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