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破顔)의 웃음은 우리 생활 속 최대 활력소라고 했다. 울며 노래하고 웃으며 곡(哭)하는 광대놀음이나 가증스러운 두 얼굴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입버릇처럼 웃는 사회를 말하고 웃음의 가치를 일소일소(一笑一少)로까지 표현하는 터다. 대인관계에서의 웃음의 가치는 윤활유나 같은 작용을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잖은가.

그러나 웃음이 너무 헤프면 실없이 비굴해 보인다는 측면이 있었다. 이런 탓에 우리 옛 어른들은 억지로 웃음을 참아내며 근엄해 보이려고 무던히 애썼던 것 같다. 이면에는 또 조선조때 명재상으로 이름난 오성(이항복) 대감이나 한음(이덕형) 대감 같이 숱한 유머를 생산해서 후세에 이르기까지 만인을 웃도록 한 즐거운 역사가 없지만은 않았다.

조선 선조임금 때의 동서(東西)당쟁이 임진왜란을 야기 시킨 수치스러운 역사를 이 땅 사람 치고 모를 사람이 없다.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을 할 조짐은 전혀 없는 것이라고 율곡 선생의 10만양병설을 뒤엎어 버린 선조조정이 왜구에 쫓겨 나라 끝자락에 속하는 평양까지 피난을 가서도 파당싸움에 영일이 없었던 역사도 다들 알 것이다. 서로 삿대질 하고 고성이 오갈 때 오성대감이 일어나 “이렇게 싸움 잘하는 동인으로 동해를 막고, 서인으로 서해를 막았으면 왜놈들이 어떻게 이 땅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있었겠는가”라며 ‘유머’로써 좌중을 머쓱하게 만들었던 일화가 유명하다. 이 밖에도 우리선조들이 ‘유머’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정치적 긴장 관계를 해소하곤 했던 일화가 적지않게 전해진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으로 세계 이목을 끌었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당했을 때의 에피소드는 매우 감동적이다. 수술을 끝낸 레이건 대통령은 “할리우드에서
저격당할 만큼 주목을 끌었으면 배우를 그만두는 게 아니었는데”라고 말해 긴장하고 있는 주위를 긴장 풀고 웃게 만들었다. 서양은 유머의 과밀 지대이고 동양은 유머의 과소 지대라는 표현이 아주 적합할 대목이다.

동양에선 우리나라 말고도 사람 잘 웃기고 잘 웃는 사람이 실없다는 통념이 강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작금의 살벌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나라정치, 여의도의 삭막함을 그에 견줄 노릇은 못된다. 우리 정치의 마당에도 남을 웃게 하는 유머감각이 필수의 정치요령이 된지 오래다. 이런 필요불급한 요령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흔적 없이 정체를 감춰버렸다.

‘유머’는 고사하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목표로 해괴스러운 마타도어가 횡행하고 있는 오늘의 정치판 실태다. 물론 대선정국이 가파로울 수는 있을 것이다. 상황이 백번 그렇다 쳐도 상대진영에 던지는 유머 섞인 말 한마디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면 국민들 시선까지 한결 여유로워질 것은 명백한 흐름이다. 지금 정치1번지 여의도가 삭막해진 만큼이나 국민들 일상도 삭막해 보이는 현실이다.

이런 때 나라의 원로 어른으로서 국민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야 할 직전(直前) 대통령은 종래의 훈수정치 가지고도 모자라 아예 지리멸렬해 있는 여권의 지휘봉을 빼앗아 ‘사생결단’을 독려하고 나선 마당이다.

여의도의 삭풍이 곧 호남 석권을 위해 남하를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유머정치’의 큰 정치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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