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의 역사조명 주말프로그램은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아직까지 홍종우에 관한 역사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한제국 탄생에 미친 그의 영향을 빼놓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던 그는 프랑스에서 돌아오자마자 고종에게 “이제 왕이 아니라 황제가 되셔야한다”고 주청했다. 공식적인 황제즉위를 진언한 것이다. 대한제국 탄생은 이렇게 불씨를 지폈다. 1897년 이때가 바야흐로 청일전쟁 일본국 승리로 우리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는 해였다.

홍종우의 진언에 이어 이재형, 김두병, 이건용등의 상소문이 잇따랐고, 의정대신 심순택도 황제 칭호의 당위성을 진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을 무척 싫어했던 고종은 조선의 청나라종주권 폐기는 바로 일본이 바라는바라고 해서 이를 크게 내켜하지 않았다. 이에 원로대신들이 십여 차례나 주청하여 그해 1897년 9월17일 조선호텔 환구단에서 황제즉위식을 가졌다. 즉위식을 반대한 수구파대신들이 단식으로 항거하고 팔도의 유생들이 호곡 하는 가운데 고종은 종묘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고유문(告由文)을 읽어 내렸다.

대관식을 끝내고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이 ‘대한제국’이름을 정할 때 배석했던 대신들은 심순택, 조병세, 민영규, 김영주 등 넷이 고작이었다. 이후의 ‘대한제국’이 우리 역사적 가치를 지닐 독립국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이 또 다른 외세인 군국주의 일본의 발호를 더욱 용이토록 해 불과 얼마안돼 나라를 뺏긴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처럼 정치권력 주변에는 국가적 잘못된 판단은 물론 사리사욕이 개입할 여지가 언제나 도사려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선 유력주자로 확정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뿐아니라 포진해있는 주변인사들 전체가 국민의 지대한 관심권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후보에게는 예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변에 포진하게 될 것이고, 서로 이 후보 눈에 들기 위한 각축이 일어날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한 사람의 잘못된 진언에 의해 선거판 전체를 엉망 만들 수 있다. 하물며 대선에 성공해서 국가를 운영케 되면 틀린 진언 하나가 국가 백년대계를 뿌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명박 후보는 과거보다 훨씬 냉철해져서 옳고 그름을 똑바로 판단해야 된다. 그러려면 머리가 언제나 차갑고 가슴이 늘 뜨거워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누구라고 다를 것 같지 않다.

오늘 우리 정치지도자들 모두에게 있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질이 진정으로 아쉬운 때다. 이명박 후보가 지난주 초 당 최고의원회의에서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자’는 박근혜 전경선후보의 이른바 ‘줄푸세’공약을 당 정책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괄목 할 만한 일이다. 또 자신의 한반도대운하
공약에 대한 비판내용에까지 귀를 넓히려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그 정도 그릇이면 “자는 척 하는 사람을 깨울 수 없다”고 말하기보다 한나라당 사람이면 아무도 아예 자는 척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리더십을 가질 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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