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불 망(三不忘) - [60]
삼 불 망(三不忘) - [60]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19-06-25 10:20
  • 승인 2019.06.25 10:23
  • 호수 1312
  • 5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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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8월 중순.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함께 봉은사로 가서 태조 왕건의 진영(眞影, 얼굴을 나타낸 그림)을 알현하였는데, 두 사람이 기도를 드리려고 하자 일진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제단 위의 촛불이 그만 꺼지고 말았다. 괴이한 일이었다. 공민왕은 봉은사에서 돌아오면서 내내 불길한 상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불길한 일이로다. 무슨 변고가 생길 줄 모르니 대비하라고 태조 대왕님이 내게 신호를 보낸 것일까…….’
한편, 조일신의 난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최화상(崔和尙)이 공민왕의 친정체제 구축에 분기탱천하여 조일신에게 거사를 앞당길 것을 부추겼다.
“금상이 8월에 들어 서연(書筵, 정치토론장)을 재개함으로써 친정체제를 더욱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첨의사와 감찰사를 자신의 눈과 귀로 규정하여 백관의 감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거사를 미룬다면 기밀이 누설되어 대사를 그르치고 말 것입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잘 알겠소.”
9월 22일. 조일신은 자신의 도당(徒黨)을 집으로 소집했다. 정천기, 최화상, 장승량, 고충절, 안진, 이권, 나영걸, 정을보, 임몰륜, 손노개 등이 속속 모여들었다. 
먼저 조일신이 도당 회의를 소집한 취지를 설명했다. 
“오늘 동지들을 이렇게 오시라 한 것은 다름 아니라 공민왕이 즉위한 이후 우리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며 점점 목줄을 조여오고 있소이다. 내가 기씨 일파와 갈등을 일으키자 대간들은 일제히 나를 탄핵하는 등 조정의 분위기가 흉흉합니다. 또한 내가 여러 번 정방의 부활 등을 요구했지만, 왕은 마이동풍이었소이다. 이러한 위기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기탄없는 의견을 내주시기 바라오.”
조일신 도당의 좌장격인 최화상(崔和尙)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앉아서 눈 뻔히 뜨고 당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선제공격을 해서 국정의 주도권을 잡아야 합니다.”
이권(李權)이 구체적인 거사 대상을 거론하면서 말했다.
“먼저 공민왕의 즉위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반대파 기철, 기륜, 기원, 고용보, 박도라대, 이수산 등을 도륙해야 합니다.”
그러자 고충절(高忠節)이 거사 방법을 제안했다. 
“거병을 하면 역모로 몰리기 십상이니 이번 거사는 일단 기씨 일파들 집에 자객을 보내어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는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때 제주목사로 좌천되어 이제현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던 정천기(鄭天起)가 나섰다.
“공민왕의 개혁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던 전 도첨의정승 이제현도 이번 기회에 제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온건파인 이권이 반대를 하며 나섰다.
“이제현을 제거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인 줄 압니다. 이제현은 조정의 원로로 성리학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지금은 환로(宦路)에서 물러나 있기 때문에 만약 그를 제거한다면 우리의 거사가 대의명분을 잃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수하 도당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일신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오늘 회동에서 나온 의견들을 정리하겠소. 이제현은 과거 나보다 윗자리에서 조정의 대소사를 결정하였소. 그것이 나에게는 눈꼴사나운 일이었지만, 그가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왕의 신임을 얻고 있으니 어찌할 수 없소. 그러니 이제현 제거 문제는 거사를 끝내고 난 뒤에 다시 생각해 봅시다. 결론적으로 공민왕이 원나라가 점차 쇠미해지고 중국 대륙에서 한족이 궐기하는 상황을 감지해 반원적 기치를 높이 들고 있으니 이를 기화로 기씨 부원배들을 제거한 뒤 우리 도당의 정치적 위상을 드높입시다.”
9월 29일. 
이제현이 물러난 뒤 얼마 후였다. 칠흑 같은 밤은 깊어 삼경(11~1시)이었다. 조일신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부원배의 중추세력인 기철, 기륜, 기원, 기주, 고용보, 권겸, 노책, 이수산 등을 암살하기 위해 사병을 동원해 기철 일당의 집을 습격했다. 그러나 기철 일당은 눈치를 채었는지 모두 도주하여 화를 면했고 기원만이 살해되었다.
거사의 참모 장역을 맡은 최화상이 조일신에게 제의했다.
“기철·권겸 등이 제집을 빠져나와 임금이 거처하고 있는 성입동(星入洞) 이궁(離宮)에 숨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즉 이궁을 포위하여 놈들을 도륙내야 합니다.” 
“좋소. 그렇게 하시오.”
조일신 일당은 왕이 거처하던 이궁을 침입해 숙위하던 판밀직사사 최덕림, 상호군 정환, 호군 정을상 등을 살해했다. 이제현은 이미 사직한 뒤였으므로 다행히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제현은 명나라 창업공신 유기(劉基)처럼 주역에 일가견이 있고 천문지리를 꿰뚫고 있었다. 이러한 이제현의 선견지명이 자신의 생명을 보전한 것이다.  
정변에 성공한 조일신은 곧 공민왕을 강압적으로 협박하였다.
“전하, 이궁이 적도(賊徒)들에게 포위되어 위태롭사옵니다. 신에게 우정승을 제수해 주시옵소서! 신이 전하의 안위를 기필코 도모하겠사옵니다.”
경황이 없는 공민왕은 어쩔 수 없이 어보(御寶)를 열게 한 뒤 조일신을 우정승에, 정천기를 좌정승에, 이권을 판삼사사에, 나영걸을 판밀직사에, 장승량을 응양군 상호군에 제수하였다. 조일신은 홀치순군(忽赤巡軍, 황궁을 지키는 숙위병)으로 하여금 도망한 기철 등을 수색하게 했으며, 그 가족들을 잡아 구금시켰다.
정변 이후 조일신 일파에만 벼슬이 내려지자 대신들은 일제히 조일신을 의심하고 그의 전횡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조정에서 어찌 벼슬을 조일신 일파에게만 내린다는 말인가? 공민왕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조일신의 패악이 하늘을 찔러 백성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조일신의 급작스러운 벼락출세에 대신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자 조일신은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두고 역신(逆臣)이라는 소문까지 들려오는데 잘못하면 변란이 일어나 내가 암살을 당할지도 모르겠군.’
조일신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틀 뒤. 그는 변란의 책임을 모두 자신의 수하들에게 돌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최화상을 먼저 살해했다. 그리고 최화상 세력이 변란을 일으킨 것이라며 공민왕을 협박해 장승량(張升亮)을 비롯한 8명을 효수(梟首)하게 했으며, 정천기는 하옥시켰다. 마침내 그 공으로 조일신은 스스로 좌정승이 되고 찬화안사공신의 호를 받았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잔학무도한 조일신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 것이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목숨을 건 쿠데타 동지들을 모두 죽이자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한편, 조일신을 제거할 마음을 품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공민왕은 조일신의 세가 약화되자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삼사좌사(三司左使, 삼사에 속한 정2품) 이인복(李仁復)을 조용히 불러 밀지를 내렸다. 
“조일신은 참으로 천인공노할 놈이요. 그놈의 극악무도한 행패가 하늘을 찌르고 있소. 경은 그 놈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오?”
이인복은 외모가 장엄하고 언사가 정중하여 모든 이들이 그를 보면 부지중 소연(昭然, 일이나 이치에 밝음)한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단호하게 밀지에 화답했다.
“신하가 난을 일으켰을 때 그에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하루를 망설이면 그 만큼 화가 상감께 미치게 됩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결단을 내리시옵소서.”
공민왕은 이인복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동행성에 행차해 기로대신(耆老大臣)들과 협의한 뒤, 김첨수, 최영, 안우, 최원 등에게 밀지를 내렸다. 
‘경들은 비밀리에 조일신을 제거하라.’ 
이튿날. 공민왕은 김첨수(金添壽)를 행성 문밖에 숨어 있게 하고 내관을 시켜 조일신을 행성으로 불러들였다. 조일신은 자신의 참살 계획을 꿈에도 몰랐다. 그리하여 잔뜩 위세를 부리고 거들먹거리며 행성 문에 당도했다. 이때 잠복해 있던 김첨수가 바람처럼 나타나서 “역적은 내 칼을 받으라” 외치며 조일신의 목을 한칼에 베었다. 
조일신이 참살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공민왕은 명을 내렸다.
조일신의 수급은 궁궐의 번화한 거리에 효시(梟示)하여 역신의 최후가 어떤 것인가를 알리도록 하라. 그리고 조정 안에 있는 조일신의 무리는 하나도 남김없이 하옥시키고 죄질에 따라 그 책임을 물어라.

<다음 호에 계속>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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