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이 명백하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記)의 지증왕 13년에 신라장군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독도)을 속지로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서기 512년의 일이다.

그후 조선조 말에 이르기 까지 1500년 동안 수많은 기록들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한다. 그러던중 일본이 일·러전쟁 때 독도를 제멋대로 일본령으로 편입시켰다.

일본이 1945년 8월15일 항복하자. 연합국들은 전후 처리를 위해 일본 도쿄에 연합국 최고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이 최고사령부는 1946년 1월29일 지령 677호를 발표, 울릉도·독도·제주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시켰다. 독도가 한국령임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1951년 연합국측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독도를 일본령에서 제외시킨다는 문구를 빼버렸다. 일본측의 로비가 작용했다. 일본은 이것을 내세워 독도가 일본 것 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1월18일 ‘대한민국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면서 독도를 대한민국의 ‘평화선’(이승만 라인)내로 포함시켰다. 그후 대한민국은 독도를 오늘에 이르고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18세기 일본측의 지도에도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기하였다. 그밖에도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표기한 일본측 자료들은 적지않다.

그런데도 일본은 잊어버릴만하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지난 7월14일에도 일본 정부는 독도를 간접으로 일본 영토라고 해설한 ‘중학교 사회과목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일부 일본 지식인들이 반박하고 나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일본인들에게도 양심과 용기가 살아있음을 엿보게 했다. 기미지마 가즈히코(君島和彦) 교수가 그 주인공들 중 하나 이다. 도쿄가쿠게이(東京學藝) 대학 교수인 기미지마씨는 7월24일자 일본 아사히신붕(朝日新聞)에 실은 칼럼을 통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년전 아사히신붕 칼럼니스트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씨도 ‘아예 한국에 섬(독도)을 양보하면 어떨까 하는 몽상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바 있었다. 그는 최근 한·일 ‘해설서’ 갈등에 대해서도 “지금 웃는 사람은 북한의 김정일일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일본 지식인들의 용기있고 양심적인 견해 표출을 접하며 일본이 자유민주국가로서 많이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반대의견을 내세울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의 성숙을 뜻한다. 민주적 다양성과 포용력 측면에선 일본이 한국 보다 앞서간다.

작년 7월에는 일본의 전 현직 교사들에 의해 조직된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13명이 서울에 왔다. 그들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경복궁을 찾아 선대가 저지른 만행에 사죄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은 3년 전에도 방한 했었고 “일본인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한국인들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기 위해 다시 왔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자국 지식인들의 참회와 반성의 목소를 진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한국인들은 비록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억지를 묵과할 수는 하지만, 일부 일본인들의 양심과 용기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일의대수(一衣帶水) 한·일관계를 긍정적으로 발전시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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