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집회·천막 설치로 지나는 시민만 불편

14일 오후, 대한애국당 지지자들이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차양 아래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대한애국당 지지자들이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차양 아래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우리공화당의 불법 천막을 강제 철거했다. 지난 5월 10일 우리공화당이 광장에 기습적으로 천막을 설치한 지 47일 만이다. 철거 역시 기습적이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5시 20분경 직원 500명과 용역업체 직원 400명 등을 투입해 천막을 걷어냈다. 이 과정에서 천막을 지키던 당원과 지지자들이 거세게 저항하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광화문광장에서 시설물을 강제철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형평성 논란’일어난 서울시의 우리공화당 천막 철거
“광장 돌려 달라” 시민들 요구 거세져

천막 강제철거는 시 추산 55명에 달하는 부상자를 낳았다. 가벼운 호흡곤란 등의 경상도 있었지만 서울시 관계자 중에는 쇠파이프에 맞아 복합골절상해 등 중상을 입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민주주의에는 인내에 한계가 있다”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람에게조차 민주주의를 적용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철거점거비용 약 2억 원을 우리공화당에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또 서울시는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 등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상해, 폭행, 국유재산법 위반, 집시법 위반 등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고발했다.


하지만 우리공화당은 철거 6시간 만인 25일 오후 철거된 자리를 비롯해 지하계단 옆까지 천막을 재설치했다. 이번에 설치된 천막은 기존 2개에서 대폭 증가한 8개다. 서울시의 행정대집행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천막을 정치적 근거지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우리공화당 측은 세월호 천막을 근거로 서울시의 대처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 대표는 지난달 26일 tbs ‘색다른 시선, 이숙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광화문에 지금까지 불법적으로 집회했던 좌파 단체들이 대단히 많다”면서 “그것(천막)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원순 시장의 행정대집행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면서 “헌법으로 보장된 정당의 자유 활동은 서울시의 조례라든지 공문으로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일각에서도 이 같은 논란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1708일간 머문 세월호 천막

우리공화당의 주장대로 세월호 유가족 단체는 지난 2014년 7월부터 2019년 3월까지 1708일간 광화문 광장에 천막을 쳤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 단체가 친 천막은 모두 14개로, 이 중 11개는 박근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서울시가 설치한 것이다. 나머지 3개는 우리공화당의 말처럼 불법 천막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박 시장은 이 3개 천막에 대해 철거 요청을 하지 않았다. 유가족 단체는 서울시 조례에 따라 불법 천막에 대해 1891만5000원의 변상금과 652만 원의 전기 사용료를 냈을 뿐이다. 특히 박 시장은 세월호 천막이 철거된 이후에도 광화문 광장에 목재로 만든 세월호 기억공간을 따로 설치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 측은 “세월호 추모 천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며 “둘을 비교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못 박고 있지만 “무엇이 다르냐”는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천막을 포함해 지난 2014년부터 올해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무단 점유 및 천막 설치 사례는 총 13건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서울시가 강제 철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이 13건의 사례에 대해 총 21회에 걸쳐 5016만 원의 변상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세월호 유가족 단체에 이어 2014년 8~9월 11일간 진행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 미사, 기도회의 경우 5만9000원을 부과 받았다. 2016년 11월 5일부터 2017년 3월 22일까지 138일 동안 진행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및 박근혜 퇴진운동’ 촛불집회 당시 설치된 ‘블랙텐트 공연장’ 70개 동과 조형물 등에 대해서는 강제철거 대신 2900여 만 원의 변상금을 물도록 했다. 2016년 4월 녹색당이 20일간 광화문 광장을 점거했을 때는 8만 원이 부과됐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74일 동안 열린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 부당해고 단식농성은 54만3000원, 2018~2019년 태안화력발전소 사인규명 및 비정규직 철폐 운동 관련 57일 간의 점거에는 55만7000원이 각각 부과됐다.

‘정치적 목적 집회 원천 금지’ 유명무실

광화문 광장은 원래 정치적 목적의 집회나 시위 등이 원천적으로 금지된 공간이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시민의 여가 및 문화 활동을 위해서만 광장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문화제’ 등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적 목적의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광장에서 만난 시민 A(남·32)씨는 “광장에서는 1년 365일 내내 집회가 이어지는 것 같다”면서 “앰프 소리가 시끄러워 일부러 광장을 두고도 빙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시민 B(여·27)씨 역시 “무슨 집회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노래나 구호 등이 공격적이어서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며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나 시위 자체를 불허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실제 ‘시민의 광장’이라는 광화문 광장에서는 최근 3년 간 약 700차례에 달하는 집회·행사가 열렸다. 2016년부터 2019년 5월까지 문화제나 공연, 기념식, 캠페인 등의 명목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행사는 총 692건이었다. 1.8일당 1건의 행사가 열린 셈이다. 사실상 끊임없이 행사가 진행됐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대부분 정치·이념 구호를 외쳤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단체의 대규모 집회도 이어졌다. 서울시의 조례가 유명무실해지는 순간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측이 ‘문화 행사’로 집회 신고를 할 경우 별다른 제한 없이 허가를 내주는 점이 이러한 상황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민의 광장’ 이제는 시민에게 돌려줘야

이처럼 광화문 광장에서 쉴 틈 없이 집회와 시위, 행사, 점거가 반복되는 사이 시민들의 발걸음은 점점 뜸해졌다.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광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앰프 소리와 격한 분위기에 당혹감을 드러내곤 한다. 이대로라면 광화문 광장은 소수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만 이용되는 공간으로 전락할 것이다. 서울시 측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광화문 광장은 지난 1395년 조선 왕조 시절,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아 정궁인 경복궁 앞에 낸 큰 길인 육조거리를 본 떠 만들어진 ‘시민의 광장’이다. 시민을 위해 만들어진 광장은 시민이 이용해야 한다. 지금의 광화문 광장은 그렇지 못하다. 700여 년 전 육조거리를 떠들썩하게 채우던 백성(시민)들의 목소리가 하루빨리 광화문 광장에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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