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조선 국권 침탈의 마각을 드러낸 1차적 작업이 1876년(고종13년)에 강화도에서 체결된 이른바 병자수호조약이다.

이에 최익현이 유생들과 함께 광화문 앞에 자리를 깔고 수호통상조약을 강요한 일본 사신 ‘구로다’의 목을 베라고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지부상소’는 도끼를 들고 올리는 상소로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들고 온 도끼로 자신의 목을 쳐달라는 뜻으로 조선왕조 역사에 딱 두 번 있었던 일이다.

최익현의 ‘지부상소’는 1591년(선조24년) 조헌의 지부상소 이후 280여년만의 일이다. 이때의 조헌 역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신을 보내 정명가도(征明假道)를 강요했을 때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고 지부상소를 올렸다.

최익현이 그토록 극렬히 일본과의 수호조약을 반대한 첫째 이유는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의 힘이 강하고 그에 비해 조선의 힘이 약하니 일방적으로 저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왜란 때의 풍신수길이 명나라 정벌을 위한 길을 열라고 조선조정에 공식요구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우리의 국력이 당파싸움 권력싸움으로 쇠잔했을 때의 일이다.

그만큼 나라사정이 국론이 흔들리고 어지러워지면 외세에 얕보여 침략을 부추기게 된다. 북한의 김정은까지 국가의 진정한 평화와 튼튼한 안보는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하는 ‘강력한 힘’ 주장은 당연히 북한 핵무기를 완성시킨 오만감의 발로일 줄 안다.

그에 반해 우리 현실은 지금 위장 평화 공세에 빠진 무장해제가 물리적 군사시설 철거나 축소뿐 아니라 국민정서의 안보관 해이현상이 보통 심각하지 않다. 국민 분열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이제 광화문 앞에서 목숨을 담보로 지부상소를 올렸던 이 땅 선비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민주정치의 근간인 정당 정치가 정파 이익만 골몰하다보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정당 해산 청원이 여야 세 과시로 나타나고 조롱거리가 됐다.

나라 곳곳은 자기들만 살겠다는 악다구니와 궤변이 판을 치고, 경제는 차라리 외환위기 때가 낫다는 말이 나올 지경으로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노조가 무법천지를 만들어도 공권력은 숨죽인 상태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 지경에서도 정치는 정쟁을 멈추지 못한다. 집권여당은 제1야당이 폭망하길 바라고 제1야당은 집권당이 망하길 바라는 터에 서민 삶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적폐 청산’이나 ‘역사 바로세우기’가 민생(民生)보다 앞서고 있다.

이 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남북관계는 고 이희호 여사 장례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보내온 조화 받으러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이 판문점까지 직접 달려 나갈 만큼 매달리는 관계다. 조화를 들고 온 김여정 본인조차 조화 받으러 정의용 실장이 온다고 하니 놀라워 했다고 한다.

옛 조선왕조 조정이 대국(중국) 황제가 보낸 사신 맞이를 위해 측근 대신을 국경까지 나가도록 했다. 조화 정도는 장례위원 중에서 누가 나가 받아오면 될 일이었는데, 그 조화를 영구 보존키로 한다니 기가 막히다.

이 정부는 잘못을 잘못으로 말할 용기도 정직함도 없다. 2017년 5월 10일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이런 세상이면 국민통합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많은 국민들이 마음을 바꾸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