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우리공화당 불법천막 막으려 광화문광장에 139개 화분 설치
화분 훼손시 공화당 형사처벌 가능…미세먼지 저감 나무심기 측면도
시민이 아이디어 내고 공무원이 공론화…즉각 채택 시민 반응 긍정적

[일요서울ㅣ이완기 기자] 서울시가 우리공화당의 불법천막 재설치를 막기 위해 광화문광장에 대거 설치한 화분이 사실상 '신의 한 수'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이 천막 재설치를 위해 화분에 손을 댈 경우 형사고소라는 법적 부담을 져야 하는데다, 화분 설치가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있다는 다양한 반등이 나오고 있다.  

4일 오전 현재 광화문광장 남측 이순신장군상 주위로는 대형화분 139개가 설치돼있다. 광화문 지하철역 진입로 바로 옆을 따라 해치마당 직전까지 화분이 줄지어 배치됐다. 공화당이 최고위원회와 기자회견을 위해 주로 활용했던 이순신장군상 뒤쪽 공간에도 화분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지난달 25일 공화당 천막을 철거한 행정대집행 직후 15개가 설치됐고 이후 같은달 30일, 이달 2일과 3일에 걸쳐 화분이 광장으로 옮겨졌다. 서울시 푸른도시국은 화분을 대량으로 공수하기 위해 전국 곳곳의 양묘장을 급하게 섭외해야 했다.

화분 종류는 다양하다. 성인 가슴 높이인 가장 큰 화분부터 무릎 높이 화분까지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의 화분이 설치돼있다. 가격도 차이가 있다. 가장 큰 화분은 300만원이고 110만원까지, 80만원짜리 등이 있다. 한꺼번에 많은 화분을 들여오다 보니 일정한 디자인과 규격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시는 설명했다.

화분 운반비용으로만 5000만원 정도가 투입됐다. 그 결과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은 약 2억2000만원이다. 

지난달 25일 행정대집행 비용이 2억원으로 추산되는데 비슷한 수준의 비용이 화분 설치에 투입된 것이다. 행정대집행 비용은 서울시가 공화당에 청구해 받을 수 있지만 화분 설치비용은 청구 대상이 아니라 시가 부담해야한다. 2억원은 이순신장군상 동편에 조성된 세월호 기억공간에 투입된 시 예산과 비슷한 수준이다. 

화분 설치는 시민 의견으로부터 시작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공화당 천막을 막기 위해 화분을 놓자는 의견이 나왔고 서울시 공무원이 회의석상에서 이 의견을 공론화했다. 그 자리에서 해당 의견이 전격적으로 채택돼 화분 설치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당초 시 내부에서는 화분 대신 그늘막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공화당의 불법농성을 돕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분 설치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2022-3000, 아낌없이 주는 나무심기 프로젝트'에 부합한다. 시는 2022년까지 3000만 그루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아울러 화분은 서울시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시는 설명했다.

나아가 화분은 무거워서 옮기기 힘들뿐더러 공화당의 재설치를 차단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시는 화분에 '이 시설물은 서울시 소유재산으로 무단으로 이동하거나 훼손시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를 써 붙였다. 공화당이 재설치를 시도하면서 화분을 옮기거나 파손할 경우 형법상 재물손괴 혐의로 형사고소하겠다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실제로 화분이 재물손괴의 증거 역할을 하면 자칫 이번 사태에 연루될까 걱정하는 경찰로서도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損壞),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화분들 덕에 이순신장군상 인근은 불법천막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시의 다음 고민은 세종대왕상 주위와 해치마당이다. 공화당이 광화문광장 북편인 이곳에 천막을 치면 서울시로서는 다시 행정대집행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는 세종대왕상과 해치마당에까지 화분을 설치하지는 않았다. 화분이 시민의 광장 이용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장군상 주위는 애초에 행사를 위한 공간이 아니지만 세종대왕상 앞과 해치마당은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곳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세종대왕상 앞부분이나 광장 북쪽은 시민이 사용허가를 받아서 행사를 하는 곳이다. 무대 공연 등을 하기 때문에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공화당으로서도 세종대왕상 주위에 천막을 치기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시에 따르면 공화당은 최근 세종대왕상 주위에 천막 설치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돌연 설치를 포기하고 행진만 하고 지나갔다. 세종대왕상 동편에는 공화당이 최우선 고려대상으로 삼는 한미동맹의 주요시설인 주한 미국대사관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화분은 공화당이 천막 설치를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화당 사태가 마무리돼도 화분은 광화문광장에 남아있을 수 있다. 시민 반응이 나쁘지 않은데다가 향후 광화문광장 개편 과정에서 화분들이 여러 용도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시 관계자는 "지금은 화분들이 광장에 있지만 (공화당 사태가) 진정되면 공원으로 갈 수도 있지만 여름에는 그늘 용도로 좋을 수 있다는 시민 의견도 있다"며 "더 유지할지 아니면 옮길지는 시간이 흐른 뒤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년부터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는데 화분도 설계에 반영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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