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남북미 정상의 만남을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일본에서 G20정상회담이 한창 열릴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둘의 만남을 상상하기에는 하노이에서의 실패가 드리운 그늘이 너무 깊었다.

대부분의 전문가,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방한과 김정은을 엮어 스토리를 만들 생각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눈에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의 냉각기가 필요했다.

트럼프가 트위터에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는 글을 올리고서야 기류가 바뀌었다.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역시 ‘만날 수 있다, 없다’를 두고 둘로 나뉘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판문점 만남이 성사될 것이라고 장담했고,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전화통화만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적으로 만남을 예측한 박지원이 웃었지만 “구제불능”이라는 욕까지 먹은 강효상도 딱히 잃을 것은 없었다. 

욕을 먹는 것은 순간일 뿐이지만, 관심을 받는 것은 인지도로 이어진다. 강효상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서 다음번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 강효상 입장에서 욕먹으면서 쌓은 인지도는 탄탄한 정치기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판문점 회동에 악담을 퍼부은 것은 강효상 만은 아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문대통령이 철저히 소외”되었다고 했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객으로 전락”했다고 깎아내렸다.

여, 야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판문점 회동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익이나 자기 당의 전략적인 입장은 고려하긴 하지만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한 말과 사진이 언론에 실리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문대통령을 패싱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언론이 나를 패싱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여의도에서는 강효상과 같은 정치인은 흔하게 볼 수 있고, 강효상과 같은 정치인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정치인은 태생적으로 관종이다. 관종이란 ‘관심병 종자’를 줄인 말로 ‘관심받기를 즐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트럼프야 말로 세계사적 관종이라 할 수 있다. 태뉴적 관종인 정치인들은 모든 행사에서 주빈자리에 앉아야 하고, 소개나 인사말을 빼 먹으면 난리가 난다. 시청주관 행사에 국회의원 소개를 빼 먹어서 시장과 국회의원 사이가 틀어졌다는 에피소드는 종종 있을 법한 일이다. 정치인은 어떤 자리에서건 주인공이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유권자의 관심은 정치생명과 연결된다. 유권자의 관심을 표로 이어가야 할 숙명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끊임없이 당대의 매체를 통해 ‘관종질’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인쇄물 시대에는 신문 1면에 실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방송시대에 접어들면서는 TV출연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고서는 모든 정치인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에 매달린다.

정치인 포함, 모든 관종들은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관심은 다 좋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 악의적인 댓글도 돈이 되는 것이 관종들의 세상이다. 튀기 위해서라면 일부러라도 욕먹는 행동이나 발언을 주저하지 않는다.

관심을 끌 수만 있다면 정치적 올바름 따위나 집단의 이익은 쉽게 무시된다. 오늘 날의 관종은 대중의 관심을 조회수나 별풍선, 광고로 연결시켜 돈을 번다. 정치적 관종은 대중의 관심을 돈이 아닌 표로 연결시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여전히, 문제는 품격이다.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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