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말한 소위 ‘미니멈의 법칙(law of minimum)’. 흔히 쇠사슬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가장 강한 고리가 아니라 가장 약한 고리가 전체의 강도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표현하곤 한다.

즉, 다른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종국적으로는 가장 부족한 조건에 맞추어 힘이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물통에 담을 물의 양은 높이가 가장 낮은 물통에 의해 결정된다는 ‘리비히의 물통’으로 같은 이치를 설명하기도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한 한일 갈등에 대해 “지금 공은 한국 쪽에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국제법 상식에 따라 행동해 주기를 바란다”는 억지 주장으로 한국 정부의 대응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관련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착수하였다. 

 이에 한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일본 정부의 보복적 성격의 수출 규제 조치는 자유무역주의에 위배되고 WTO 규범 등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규정하고, WTO 제소를 포함한 외교적 대응 방안 등을 적극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와 산업의 가장 약한 고리를 일본이 정면으로 건드린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하여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안 등 다각적인 대책을 거론하고는 있지만, 한국 기업들이 받는 직접적인 타격을 줄이는 데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민간 연구소에서는 반도체 수출 규모가 국내 총생산의 6% 내외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제재 여파로 수출물량이 10% 감소하고, 경제성장률이 0.6% 정도 하락할 수도 있어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하방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진단도 발표하였다. 

 국난 상황에서는 기어이 우리 국민들 스스로 들고 일어서야만 정부와 정치권이 정신을 차리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조치에 반발하는 국민들은 온라인 상에 불매운동 대상 기업 명단이 정리된 ‘일본 제품 불매 목록’을 확산시키며 자발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불매운동의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라는 불매운동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국민적 분노 속에서도 정치권이 보여주는 모습은 다소 한가로운 느낌마저 준다. 여당 원내대표는 “일본이 희토류 수입처 다변화를 꾀했듯이 우리도 반도체 부품의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국산화를 추진하여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라며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진화해야만 하는 기업의 급박한 입장과는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를 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일”이라는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논평에 대해 여당은 “자유한국당은 자민당 출장소냐”라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대응하면서 “대한민국 국익 앞에는 여야가 없어야 되는데 아베나 일본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야당은 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느냐?”는 식의 면피성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리더의 작은 실수나 무능력이 굴지의 회사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하물며 국민의 생존이 걸려있는 정부나 국가 단위는 어떠하랴.  스스로 부족한 점과 약한 고리를 인식하고 수정, 보완함으로써 국민의 행복한 삶에 기여해야만 하는 게 정치권과 정치인의 숙명일 것이다.

정작 일본이 간파하고 정면으로 공격해 온 대한민국의 가장 약한 고리는 경제나 산업이 아니라 바로 ‘정치권’, 그 곳이 아닐까. <서원대학교 교수 / 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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