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가덕도 신공항 ‘탄력’ vs TK 김해 신공항 백지화 ‘부글부글’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신공항 건설 문제로 TK(대구·경북) 지역과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이 다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번 판세는 지난번과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TK의 김해 신공항 확장안에 무게추가 기울어진 반면, 이번엔 가덕도 신공항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해 부울경이 탄력을 받고 있다. 당청 역시 노골적이진 않지만 몇몇 발언을 통해 슬며시 가덕도 신공항의 손을 드는 모습이다. 이에 정치권 안팎으로 ‘TK 홀대론’까지 흘러나오며 해당 지역 정치인들만 속을 끓이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부울경 자치광역단체장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소재의 국토부 용산사무소에서 만나 면담을 했다. 이날 송철호 울산시장(왼쪽부터),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시자사가 김 장관과의 면담 장소에 밝은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동남권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부울경 자치광역단체장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소재의 국토부 용산사무소에서 만나 면담을 했다. 이날 송철호 울산시장(왼쪽부터),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시자사가 김 장관과의 면담 장소에 밝은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김해 신공항 확정에만 10년…신공항 완공은 언제쯤?
-가덕도 신공항, 총선 요충지 낙동강 벨트 사수 전략 ‘포석’


잠잠했던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총선과 맞물려 다시 급부상했다. 이 가운데 오거돈 부산시장을 중심으로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부울경(부산·울산·경남) 광역단체장은 뜻을 모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재추진할 것을 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로 인해 김해 신공항 건설에 제동이 걸리자 TK(대구·경북) 지역 정치인들은 물론 주민들까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동남권 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은 지난 1일 세종정부청사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를 방문해 항의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국토부는 “김해 신공항 (확장안)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미 국토부장관 역시 지난달 26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김해 신공항 확장안 추진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논의기구 국토부서 총리실로 부울경만 합의에…TK 배제 논란

국토부의 공식 입장과 달리 세간에서는 김해 신공항 확장안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보고 있다. 김 국토부 장관과 부울경 광역단체장은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토부 용산사무소에서 만나 김해 신공항 건설의 적정성을 총리실에서 논의키로 했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합의문에는 국토부와 부울경 광역단체장 등은 총리실 주재로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서 김해 신공항의 적정성에 대한 검토 시기와 방법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고 이에 따르기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회동에 참여한 김경욱 국토부 제2차관은 합의문 발표 직후 “부울경 검증단이 (김해 신공항 확장안에 대해) 문제 제기한 게 있다”며 “그 부분에 대해 정부 차원의 검토 없이 (김해 신공항 확장안을)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합의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TK지역 민심은 들끓었다. 이들은 이 합의가 TK지역이 배제된 채 치러진 ‘반쪽 합의’라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삼았다. 

남부권관문공항재추진본부는 지난달 24일 대구시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대구·경북이 배제된 김해신공항 총리실 검증 합의는 절차적 정당성이 없으므로 무효”라고 들고일어섰다. 

뿐만 아니라 이 현안이 총리실로 이관되면 건설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김해신공항 기본 계획을 세운 뒤 ‘2021년 착공→2026년 완공’이라는 일정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결정권이 국무총리실로 넘어가면서 적정성을 검토할 전문가 구성, 검토 시기 등 여러 문제를 두고 지자체 간 입장차가 생길 수 있다. 이를 조율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소요돼 당초 일정보다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또한 ‘총리실 판단에 따른다’는 합의문 문구도 논란 대상이다. 총리실 판단에 따라 김해 신공항 확장안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에 한쪽에서는 김해 신공항 확장안이 전면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신공항 건설 관련 총리실 재검토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일은 아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광역단체 간 합의가 불발될 경우 논의기구를 국무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이를 풀어갈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부산 지역경제인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검증 결과를 놓고 5개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생각이 다르다면 부득이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검증 논의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시사했다.

黨 靑, 가덕도 신공항 ‘뒷배’ 총선 찍고 ‘동진전략’ 염두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에서도 내심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바라는 눈치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부울경 광역단체장들의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주장에 청와대는 침묵으로, 민주당은 이해찬 당대표의 발언 등으로 드러나지 않는 뒷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골자다.

공교롭게도 현재 부울경 세 곳의 광역단체장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특히 오 부산시장의 경우 삼전사기(三顚四起)의 인물로, 칠전팔기 정신으로 부산의 문을 두드려 4번째 도전 때 시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오 시장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선거 공약으로 내건 만큼 부울경 광역단체장 가운데서도 이 문제에 관해 가장 열띤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13일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예산정책협의회 개최 당시 비공개 협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재도약은 동남권 관문공항이 답’이라는 제목으로 동남권 관문공항의 필요성에 관해 직접 브리핑하고 중앙당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을 요구했다.

이에 이 대표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양극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고 남북 평화시대에 인천공항과 역할 분담할 수 있는 동남권 관문공항이 필요하다”면서 “부울경에서 힘을 모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부울경 검증단의 결과가 발표되면 김해신공항을 관문공항으로 결정한 국토부보다 총리실을 주관으로 재검토해 후속 조치 등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당 차원에서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2월 발언 ‘총리실 산하 승격’ 발언에 이어 당에서도 가덕도 신공항에 세를 보탠 것이다. 

같은 달 19일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국회 본회의에서 “(김해 신공항 확장 관련해) 부울경 검증단과 국토부와의 수용가능한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이 조정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문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이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장을 불러 왔다. 

이 같은 당청의 ‘가덕도 띄우기’는 내년 총선에서 PK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공항 건설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주제다. 선거에서 전략적 요충지인 낙동강 벨트를 내년 총선에서도 사수할 목적으로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꺼내든 것이다. 

낙동강 벨트는 나아가 대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민주당은 20년 장기집권 플랜 실현을 위해 보수 성향이 강한 영남 지역으로까지 뻗어가야 한다는 ‘동진(東進)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 전략의 필승을 위해서라도 낙동강 벨트를 지켜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문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으로 지역 간 편 가르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꼬집었다. 김 의원은 경북 안동에 지역구를 둔 ‘TK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실시된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같이 발언하며 “지난 2월 13일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김해 신공항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이후 모든 계획과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졌다”며 “대통령의 측근 3인방인 김 경남도지사, 송 울산시장, 오 부산시장이 모여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합의문을 내놓고 총리실은 TF팀을 만들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금 선거에서 한 표 더 얻으려고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있다”며 “13년 전 갈등의 시대로 시곗바늘을 되돌려 놓고 있다”고 질책했다.

김 의원의 말처럼 동남권 신공항이 김해에 들어서기로 의견을 모으는 데도 꼬박 10년이 걸렸다. 동남권 신공항 안건은 2006년 참여정부 당시 최초로 정치권 화두에 올랐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지나며 ‘제2허브공항 건설’로 몸집이 커졌다. 

당초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이 신공항 유치를 놓고 다퉜으나 국토연구원의 경제성 분석 결과 두 곳 모두 부적절 판정을 받아 무산됐다. 
주춤했던 신공항 건설은 18대 대선 때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문재인·박근혜 후보가 일제히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신공항 유치 대상지로 대구·울산·경북·경남은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를 주장하면서 지역 간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두 지역은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공항계획 및 설계전문 회사인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영남권 신공항 용역 연구 결과 김해공항 확장안이 꼽혔다.

당시 연구를 맡았던 장마리 슈발리에 ADPi 용역 책임자에 따르면 가덕도는 자연적 공항 입지로 적합하지 않고 건설비용도 많이 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밀양은 접근성과 지형에 따른 안전 문제가 요인이었다.

이에 2016년 5개 광역지방자치단체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수용했다. 이때부터 김해공항은 ‘김해 신공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TK지역은 당시 5개 단체가 합의해 내놓은 결과를 부울경 세 단체가 번복하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다.

이에 맞서 오 시장은 지난 3월 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에 반론했다. 

오 시장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당시 김해 신공항 발표 전 국토부와 부산시가 다섯 번에 걸쳐 공식 연구를 한 바, 김해 신공항으로는 동남권 관문공항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김해 신공항 발표에 당시 가덕도 신공항에 사활을 걸던 부산 지역 여권 정치인들이 입장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다만 오 시장을 비롯한 부울경 광역단체장 세 명이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여 민주당 소속 TK 의원들도 반기를 들고 있지만, 당청이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아 당분간 정치권에서 ‘TK 홀대론’이 떠다닐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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