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논쟁이 뜨거운 이념적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상급식 찬반논쟁의 대립 전선은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밥을 먹이자”는 논리와 “무상급식으로 교육예산 배정에 차질이 일어난다”는 논리다. 즉 윤리와 경제의 관점인 것이다.

재벌 집안에 태어난 아이가 학교에서 무상으로 급식을 받는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보수 논리를 대표한 격이 됐다. 보수의 논리는 가난한 아이와 부유한 아이에게 동일하게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과잉’이고 ‘낭비’라는 주장이다. 반면 진보의 주장은 의무교육 기간에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요약하면 ‘전면 무상급식’론과 ‘부분 무상급식’론의 충돌이다. 전면 무상급식이 급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경제적 관점의 주장이 일리 없지 않다. 또한 어른들이 가진자, 못가진자를 구분치 않고 공평하게 아이들을 먹이면 아이들도 그렇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란 윤리적 관점의 주장이 전혀 틀려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이런 ‘경제’관점 논리가 보수논리가 되고 ‘윤리’관점의 주장이 진보논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소모적이다. 무료급식 아이들이 ‘눈칫밥’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위해 모두 공짜 밥을 먹여야 한다는 사상이 놀랍다. 경기도 교육청이 작년도 관내 5,6학년 급식예산 816억원을 책정키 위해 학력신장 예산 115억원과 유아, 유치원, 장애아 교육비 등을 폐지하려 했다.

‘평등한 밥상’을 위해 장애인, 유아, 서민학부모들 희생을 강요한다는 편집적 이념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1775년 프랑스에 공산주의 혁명을 기도한 ‘바베우프’의 사회모델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식사, 주거, 의복을 배급하고 아이들의 일괄적 국가양육을 통해 국민에게 같은 삶의 질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현실의 무상급식 논리가 이 극단적인 평등이념과 맥이 같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문제는 가난한 아이들이 받는 급식을 창피한 일로 가르쳐야 하느냐는 점이다. 부족한 이웃을 도와주고 도움 받음을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사람 사는 사회의 미덕이었다. 도움 받는 일을 ‘수치’라고 한다면 이웃을 돕는 일은 이웃을 ‘모욕’한 행위가 될 뿐이다.

과거 우리 교육은 가난이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를 부끄러워함이 오히려 수치라고 가르쳤다. 한낱 급식 과정에 아이들의 차이를 없애겠다는 주장이 우리시대가 추구하는 합리적인 사회복지와 얼마나 맥이 닿을지 의문이다. 사회주의 프랑스의 무상급식은 학부모들에 대한 철저한 수입조사에서 시작된다.

학부모가 한 달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냐에 따라서 급식비는 따로 계산된다. 극빈자는 전액무료, 많이 벌면 전액 유료라는 방식이다. 산정된 급식비는 해당 시에서 아무도 모르게 학교로 보내게 돼있다. 누가 얼마를 혜택 받는지를 남이 모르게 하자는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의 자존심 보호 차원일 게다.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전선은 낙동강 전선이며 여기서 밀리면 부산까지 간다”는 말이 뼈있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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