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가 구제역 재앙에 빠지고 물가 상승으로 국민 불안이 늘고 있는 가운데 집권 한나라당의 개헌 논쟁이 뜨겁다. ‘분권형’ 개헌이라는 갈등의 불씨가 만들어진 상황이다. 핵심적인 의문은 만약 친이계의 박근혜 대항마가 뚜렷했더라도 지금처럼 친이계 중심의 개헌 발의 요구가 강했겠느냐는 점이다.

설 연휴 귀향 활동을 벌인 대부분 의원들은 유권자들의 개헌에 대한 관심이 별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개헌 주장이 명분을 갖추는 것은 노무현 정권 말기 여야가 개헌을 합의했고, 시대변화를 수용하는 헌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명분 있는 일이 국민의 마음을 달굴 만큼 절박하지가 않다는데 있다.

오해 없이 개헌을 가장 순리적으로 해낼 시기는 이미 놓쳐버렸다. 개헌은 각 정파 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는 정권 초기 전반부가 가장 적절한 시기다. 이 정권은 초기 인사파동과 광우병 촛불사태, 2010년 세종시 파동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이런 사회적 갈등에 지쳐있는 민심이 개헌의 진정성을 의심 안할 리 없다.

작년 하반기부터 개헌론을 주도해온 이재오 특임장관은 ‘개헌 추진’이 이 대통령의 뜻임을 부각시키고 나섰다. 이 장관은 권력 구조와 관련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24개국 중 대통령제를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분권형 대통령제’ 신봉자가 됐다. 이 장관은 “문제는 친이계의 패배주의”라며 “친이계가 뭉치면 개헌을 할 수 있다”고 친이계의 결집을 요구하고 있다.

또 대통령의 헌법상 개헌발의권과 관련, 이 장관은 국회의 개헌논의가 좌절되면 대통령이 자기희생의 결단으로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재오 장관이 이정도로 개헌에 목을 매는 데는 차기 대권 경쟁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대항마를 찾지 못한 친이계의 생존전략과 맞닿아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 ‘일요서울’은 벌써 작년 9월 9일자 발행호에서 ‘정·부통령제 개헌 임박’을 예고하고 ‘박근혜 대통령, 친이 부통령’ 빅딜설을 보도했다. 앞선 8월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95분간의 긴 만남을 가지고도 대화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던 상황이 그 같은 개헌 합의론에 이른 것이다.

개헌 추진론자들이 “18대 국회에서의 개헌 추진은 당론”이라고 주장해 또 하나의 논쟁거리가 됐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조차 “당시 당론이 지금도 유효한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고 하는 터다. 친이계가 세종시 논쟁 때 “17대 국회와 18대 국회는 사람이 다르다. 상황이 바뀌었다면 당론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이 1년 전 일이다.

물론 헌법 개정의 여지는 언제나 열려있다. 다만 개헌의 의도와 내용이 문제일 것이고 또한 시기의 문제가 걸려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 나오는 개헌론은 ‘누구 위한 개헌이냐?’는 의구심을 키울 수밖에 없다. 현 정권 담당자들의 ‘임기 후 대책’으로 비치는 개헌론은 개헌도, 국정수행도 어렵게 할 것이다. 여론의 동의를 얻지 못한 고립무원 상태의 개헌론은 하루라도 빨리 접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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