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BBK 사건 주역의 한사람인 에리카 김의 돌연한 귀국 배경에 세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반 귀국 하듯이 한 이들 귀국이 우연 일 리 없다는 의혹이 짙다. 에리카 김의 한 측근은 “대형 유통업체에 물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위해 약혼자와 함께 국내에 입국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가 “김 씨가 미국에서는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자 한국에서 뭘 하려고 해도 기소중지가 풀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 한 것과 부합한다. 에리카 김이 2008년 2월 미국 법원으로부터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가택연금 6개월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 받은 만큼 그곳에서 사업을 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사업이 가능 하려면 전제되는 조건이 있다.

에리카 김은 동생 김경준 씨와 공모하여 BBK 자회사격인 옵셔널벤처스 자금 319억원을 횡령하고, 언론에 BBK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란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중지 된 상태다. 에리카 김이 국내에서 사업을 하려면 이 기소중지 조치가 풀려야하는 것이다. 불구속 처분과 함께 말이다. 이런 조건이 풀리려면 또 하나의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 있다.

검찰이 ‘동생 복역’을 명분으로 에리카 김을 불구속 처분하려면 그가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자백해야 하는 조건이다. 에리카 김으로부터 ‘BBK 실소유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다’는 자백 정도는 나와야 정상참작의 여지가 생긴다. 문제는 에리카 김이 이렇게 순순히 자백하고 나면 공교롭게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에리카 김의 귀국 하루전날 입국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둘러싼 의혹 가운데 하나가 ‘도곡동 땅’ 관계다. 구속 중인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이 “포스코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문서를 발견했는데 이 때문에 한상률 전 청장으로부터 퇴직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한데 대해 한 전 청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었다.

에리카 김의 ‘자백’이 바로 이 대목에서 중요한 바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은 이 대통령 형의 처남인 고 김재정 씨가 소유했던 (주)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는데 이 돈의 출처가 모 생명보험회사에 맡긴 도곡동 땅 매각대금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의혹이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추가 의혹을 파생시켰다. BBK 창업 주역인 에리카 김의 ‘자백’이 천금의 무게를 갖는 맥락이다.

에리카 김의 자백여하에 한상률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짐이 덜 할 수 있으나 한 전 청장의 입이 ‘판도라 상자’나 마찬가지다. 수사 결과에 따라 정치권의 회오리는 불가피 할 것이다. 민주당이 벌써부터 수사가 미진할 때는 특검을 검토할 수 있다고 공세를 펼치는 판국이다. 한상률 씨가 에리카 김과 하루 사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돌연 귀국한 데는 필시 두 사람 간에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검찰이 한 씨의 개인비리 차원으로 꼬리 자르기 식 수사에 그쳐선 안 되는 배경이다. 야당이 한상률-에리카 김의 ‘기획입국’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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