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가 연일 ‘지진-쓰나미-원전 비상’의 삼각 재앙에 신음하고 있다. 숨을 곳도 피할 수도 없는 공포의 ‘후쿠시마현’이 인적 없이 텅 비었다. 참혹한 와중에도 놀라운 것은 신기할 정도로 침착한 일본 국민들 모습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대피요원들을 따라 차례로 피해 현장을 빠져나오며 초등학생들조차 교사의 인솔에 따라 질서 있게 이동했다.

지하철과 버스가 끊기자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지급한 긴급 구호물품을 짊어진 채 조용히 몇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은 평시와 다름없이 정상 출근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한 대재앙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고, 상상을 뛰어넘는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에 전 세계가 놀라고 있다. 지난해 22만명이 희생된 아이티 대지진 때는 오죽해서 “지진보다 무법천지의 약탈과 폭력이 더 무섭다”고 했을까.

아이티가 개발도상국 수준이어서가 아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퀸 미국의 뉴올리언스도 폭력과 부패가 난무했다. 때문에 더욱 일본인들의 차분함이 돋보인다. TV화면에서 끔찍한 참상 앞에 울부짖는 일본인들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강도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고 생필품 사재기한다는 말도 일절 없었다.

어려운 때 봐야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한 나라의 진면목도 국난에 닥쳐봐야 드러나기 마련이다. 온몸이 얼어붙는 공포 앞에서 일본인들은 침착한 국민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러한 일본을 보며 생각들이 어떤지 모르겠다. 며칠 전 국내 신문에는 재난을 당하고도 인간미를 잃지 않고 우리 기자에게 먹을 것을 집에까지 가서 갖다 주고, 구석구석 취재안내를 해주고, 어렵게 방 마련까지 해준 일본인들 얘기가 실렸다. 기자는 이런 게 바로 국격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당국은 우왕좌왕 해도 시민은 일사분란 한 일본, 미증유의 대재앙 앞에서도 너무나 차분하고 남 배려할 줄 아는 일본인들의 자세가 경이롭다. 성숙한 시민정신이 빠른 시일에 대재난을 극복할 원동력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지진발생 위험이 낮지만 언제까지 지진공포의 안전지대로 남을지 의문이다.

한반도 상황이 지진 아니라도 언제 어느 때 연평도 사태 같은 북한의 무력도발이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자연재해 뿐 아니라 국가적 위난에 대한 철저한 대비는 물론 성숙한 시민의식을 배워야 한다. 방사성 물질 한국 도착이 시간문제라는 루머 한 토막에 난리법석을 떠는 우리 꼴이 부끄럽다. 시시각각 생중계되는 현지화면은 쓰나미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생생한 장면이 있었으나 아비규환의 현장은 보이지 않고 전하는 목소리도 차분했다. 이 또한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무슨 일이 터지면 목청을 높이고 흥분하고 자극적인 표현을 다하는 한국의 방송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보였다. 일본방송을 그대로 받아 중계하는 국내 방송들이 더 흥분하고 표현도 자극적이었다. 얼마나 심해보였으면 재일교민들이 후쿠시마 원전폭발과 관련한 국내 언론들의 보도 태도에 “지나치게 공포감을 자극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국격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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