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미국 체류당시 국내 대기업 10여 곳으로 부터 5-6억원대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이 미국 뉴욕주립대 방문연구원으로 체류 중이던 2009년 3월부터 지난해 말 사이 국세청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기업 세무 컨설팅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체류비로 쓴 사실을 확인 했다.

궁금하던 한 씨의 도피자금 출처가 밝혀진 셈이다. 한 전 청장은 “기업에 연구보고서를 서너 편 제출하고 정상적으로 받은 자문료”라고 하는데 해당기업들은 “내부를 확인해 봤으나 누가 누구에게 돈을 건넸는지 확인되지 않아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의혹에 휩싸여 국세청장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난 사람에게 대기업이 자문을 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돈 전달에 관여한 국세청 직원들은 검찰조사에 “한 전 청장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면 돈의 성격은 두 가지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첫째는 국세청 현직 직원들이 한 전 청장을 돕기 위해 기업에 돈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한 전 청장이 국세청장 재임시절 세무조사 등의 편의를 봐준데 대한 대가 가능성이다. 반드시 구린 사연이 있을 것 같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의혹은 국세청장 연임 로비 혐의와 함께 몇 가지 핵심적 사항이 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차명소유 의혹이 있는 서울 도곡동 땅의 진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이어진 박연차 전 대광실업 회장 세무조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밝혀줄 핵심 인물로 지목돼왔다. 이런 관계로 그가 정권의 약점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다는 억측이 팽배했다. 그 때문에 한 전 청장을 쉽게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도 많았다.

그가 재임 중 부하 국장에게 거액을 요구했다는 단서가 나오고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파다해도 검찰이 수사에 미온적이었다. 한 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이 수사착수 보름이 훌쩍 넘어 여론의 질타를 받고서야 이루어진 점이 이례적이다. 국세청은 또 검찰 조사를 받은 직원에 대해 감찰

부서에서 진술 내용을 모두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래가지고는 수사를 받는 국세청 직원들이 제대로 진술하기가 어렵다. 조직적인 수사방해로 보여 질 일이다. 국세청 직원이 돈을 달란다고 그냥 돈을 내놓을 기업은 없다. 뭔가 속사정이 있었거나 압력을 느꼈을 것임에 분명하다. 한 전 청장은 범죄 혐의자였다. 그런 사람을 공무원들이 도운 것은 공범의 여지가 있거나 범인 은닉으로 볼만하다.

또한 국세청이 한 씨를 조직적으로 비호했다는 의혹은 국가 조직이 국가 기강을 문란케 한 중죄에 속한다. 국민 신뢰회복을 하겠다며 개혁을 약속한 국세청이 내부비리를 싸고도는 국세청 특유의 폐쇄성을 다시 한 번 보였다. 의혹을 덮으려다간 더한 의혹과 불신을 낳는다.

한 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귀국했던 에리카 김이 혐의사실 모두에 대해 ‘공소권 없음’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예상했던 대로 자유롭게 됐다. 한 전 청장 수사에 온 시선이 꽂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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